“우리 아버지 이야기가 길어져서 미안해요.”
남경희가 말했다.
“아뇨.”
하림이 얼른 말했다. 바람이 지나가는지 양철지붕이 또 덜컹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고, 그 땜에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들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장선생님이 나타났으니 사실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작가라니까 그래도 최소한 제 말을 들어주실 순 있겠구나 하고 말이예요.”
“아, 아닙니다.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하림이 괜히 부담스러워 손사래부터 쳤다. 아직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는 않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좀 냉정해진 목소리로,
“영감님, 아니, 아버님 이야기나 계속 해보세요.”
하고 말했다.
“그래요. 아버진 전역을 하시고나서 당시 모시고 있던 중대장, 그분은 나중에 대령으로 예편을 하셨는데, 그분과 군납하는 일에 관여를 하셔서 덕분에 돈도 꽤 버셨지요. 나중에 버스회사까지 차렸으니까요. 한창 경제개발의 와중에 살아갔던 사람들이 다 그렇듯 정신없이 일했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외치며 살았죠. 한참 잘 나가실 때였어요. 그렇게 우리 아버지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이가 드셨고, 늙으셨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나서 하림을 쳐다보았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눈가의 주름살이 제법 깊게 나있었고, 입술 끝도 조금 쳐져 보였다.
“제가 처음 말했듯이 아버진 직업군인 출신답게 평생을 월남 전 참전용사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그런 자부심을 여지없이 깨뜨린 일이 늘그막에 일어났어요. 베트남 여행길에......”
“베트남 여행길에....?”
“예.”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구십년대 촌가, 베트남 길이 열리고 아버진 처음 그곳으로 여행을 갔었죠. 친구들이랑.... 삼십여년만에..... 아버지에겐 추억 여행이었죠. 예전에 죽은 전우들도 떠올리고, 이젠 잘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지지리도 못 사는 베트남 땅을 둘러보기도 하는 여행 말이죠. 자랑스럽고 뿌듯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 앞에 충격적인 장면이 하나 나타났어요.”
“......”
“베트남 중부에 있는 꽝남성 안빈 마을인가를 찾아갔을 때였죠. 아버지가 직접 참여했던 전투지역이라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마을 입구 황량한 벌판에 비석이 하나 서있었어요. 아버지는 가이드를 따라 무심코 그 비석 앞에 섰는데, 그 비석엔 <한국군 증오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요.”
“한국군 증오비...?”
“예. 한국군 증오비..... 그리고 그 아래에....”
이층집 여자 남경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 아래에.... 너무나 끔찍한 내용이....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이 학살에서 희생된 자의 수가 총 430명이며, 그 중 268명은 여성, 109명은 50세부터 80세까지 노인, 82명은 어린이, 7명은 임산부였다. 두명은 산 채로 불에 던져졌으며, 한명은 목이 잘렸고, 한명은 배가 갈라졌고, 두 명은 강간을 당했다. 두 가구는 한명도 남김없이 몰살을 당했다.”
남경희는 마치 눈앞에 보고 있는 것처럼 숫자까지 정확하게 외우며 말했다.
“그런 내용이었어요.”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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