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번엔 소방수역을 자처하고 나섰다. 번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양적완화 출구전략 발언으로 금융시장에 불을 지피자 ‘추가 금리 인하’이라는 ECB 설립 이후 전례가 없는 ‘지침’까지 내놓으면서 황급히 진화에 나선 것이다.
4일(현지시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ECB는 이날 기준금리를 현행 0.5%로 동결했다. 드라기 총재는 “기준금리를 비롯해 초단기 예금금리와 최저대출 금리 등 3개 금리 모두를 인하하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드라기 총재는 또 양적완화 정책을 상당기간 지속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당분간은 출구전략 보다는 저금리를 유지하거나 이보다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CB가 향후 금리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설립 이후 처음이다. 드라기 총재는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설로 유로존 재정위기가 절정에 이른 지난해 여름에도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화려한 언변’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 ECB내에서 향후 금리정책에 대해 미리 약속하는 것을 금기시한 탓이다.
드라기 총재가 이처럼 대담한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드라기 총재는 이날 전례가 없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에 대해 “ECB내 23개 멤버 모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ECB내 매파로 꼽히는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 총재조차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FT는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ECB의 커뮤니케이션 정책 변화를 부채질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선 “슈퍼 마리오(드라기 총재를 지칭)가 ECB를 영란은행(BOE)과 연준, 일본중앙은행(BOJ)들이 사는 ‘혁명의 왕국’으로 데려갔다”면서 “이들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과 다른 부정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지난달 버냉키 의장이 채권매입 프로그램의 단계적 축소를 통한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확인하면서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채권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여기에 긴축재정 반발에서 비롯된 포르투갈의 국정 혼란으로 유로존 재정위기국의 국채금리가 다시 치솟는 등 지난해 여름 이후 잠잠했던 유로존의 취약성이 재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르두갈의 국채금리는 8%를 웃돌며 사실상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다. 드라기 총재 입장에선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강력한 시장 안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영란은행(BOE)도 같으날 기준금리로 0.5%로 유지하며 ECB와 행보를 같이했다. 마크 카니 신임 BOE 총재는 "2015년에 금리를 올릴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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