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신작..실제 4남매 성장과정 담아 낸 가족 이야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삐-하고 알람이 울린다. 2인용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이는 '카렌' 혼자뿐이다. 어린 네 남매의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아이들을 데리고 카렌은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이들이 찾아간 곳은 교도소. 아이들의 아빠와 카렌의 남편 '이안'이 있는 곳이다. 이 수백km의 거리를 걷다 뛰다 하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과 카렌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 고단한 여정은 5년에 걸쳐 반복된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그 사이 아이들은 부쩍 자라지만, 아빠를 면회하는 과정은 단 한차례의 생략도 없이 똑같은 순서를 반복한다. 여전히 귀찮스레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야하고, 교도소 입구에서는 어김없이 몸 수색에 응해야 한다. 이 지리한 과정에 비해 면회 시간은 늘 쫓기듯 지나가고, 다시 아이들과 '카렌'은 집으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 가족이 떠나간 후, 홀로 남은 이안은 매번 침대에 몸을 툭 던지고서는 멍하니 허공을 지켜본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신작 '에브리데이'는 한 가족의 질긴 일상과 변화를 그려낸다. 이들 가족에게 큰 이벤트라고는 '이안'을 면회가는 일과 '이안'이 외박을 나오는 일이 전부다. 크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지만 변화는 이들 가족들의 일상으로 조금씩 미세하게 찾아온다. '이안'이 부재하던 5년의 시간동안 초등학생 큰 딸에겐 연하의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빠 얘기만 나와도 눈물을 흘리던 막내 딸은 의젓하게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부른다. 울보 아들은 아빠 욕을 하는 친구를 때려줄 정도로 커버린다.
가장 그 시간을 힘겹게 버텨낸 건 '카렌'이다. 낮에는 마트에서, 밤에는 펍에서 일하며 4남매를 홀로 키워내는 카렌의 얼굴에는 이따금씩 우울감과 고단함이 스쳐간다. 결국 시간 앞에서 어찔할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과 이를 다잡으려는 그녀의 노력이 '에브리데이'의 큰 줄기가 된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이안'의 부재가 더 자연스러워졌을 때에도 카렌은 안간힘을 다해 그들 가족이 함께 있어야할 일상을 지켜낸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영화 설정과 동일하게 촬영기간도 5년으로 잡아 극의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미했다. 남매로 나왔던 4명의 아역들은 실제로도 남매지간이며, 집과 학교도 모두 이들이 생활하는 곳이어서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이들의 성장과정을 담는다. 한 계절이 끝나고 면회를 온 가족들이 돌아갈 때마다 카메라는 영국 노퍽 주의 무심한 듯 아름다운 사계를 보여준다. 때마침 마이클 니먼의 음악도 카렌과 이안을 위로하듯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온다.
외박을 나온 '이안'이 거실에 놓인 새 TV를 보고 불안함을 느낀 표정이나, 어느 새 머리가 굵어져 면회가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들,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하는 카렌 등 '에브리데이'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변화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이토록 무서운 습성 앞에서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에브리데이'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또 내 가족이 이뤄낸 역사를 반추하게 만드는 영화기도 하다. 청소년관람불가.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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