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김혜수는 역시 '멋진 언니'였다. 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외양 속에 온정(溫情))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는 꾸미지 않아도 화려하고,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스스로 "연예인이고 여배우라서 그렇지, 인간 김혜수가 화려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수긍하지 않았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 건 최근 종영한 KBS2 '직장의 신'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직장의 신'을 통해 김혜수는 대중들에게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으로 대활약을 펼쳤다. 그간의 김혜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첫 방송이 나가자 친구들에게서 몇 백 개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네가 어떻게 이래?" "약 먹었니?"라는 반응이 쏟아졌단다. 그러나 모든 반응이 재미있고 뿌듯했다. 그만큼 캐릭터가 견고하게 그려졌다는 얘기이기에.
사실 이 작품은 출발하기 전부터 위기에 놓였었다. 주인공 김혜수의 석사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것. 하지만 그는 제작발표회 당일 "12년 전인 2001년,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에 작성했던 논문이다. 촬영을 하면서 당시 논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많이 놀랐고 당황했다"며 "그땐 내 스스로 표절에 대한 뚜렷한 경계나 인식이 없었던 탓에 논문 작성 중 실수가 있었다. 인식하지 못했던 실수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또 김혜수는 석사 학위를 반납하고 자숙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으며 방송을 1주일 앞둔 시점이어서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막중한 피해를 끼칠 수 없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당시 함께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였던 이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그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에 더욱 주목 받았다.
'직장의 신' 종영 후 아시아경제와 만난 김혜수는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드라마 하차'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2회 정도 찍은 상태였어요. 회사 대표한테 '이거 사회적 물의지?'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하고 있는 일에서 하차해야 되는 게 맞죠. 그런데 다음 주가 바로 첫 방송이었어요. 저를 선택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한테 '너네 한번 죽어봐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오래된 일이지만 누군가 잘못된 점을 찾아냈다면 그건 분명히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저로 인해 누군가가 부담을 느끼면 안 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누가 묻기 전에 먼저 사과한 거예요. 제작발표회 날 무대 위에 서 있는데 뒷목에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그는 드라마에 피해가 갈까봐 너무나 두려웠다고 했다. 특히 김혜수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다. 초장에 스태프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드라마 자체의 평가에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스러웠다. 사실 그는 학위가 필요해서 대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저는 (이른 데뷔로 인해) 정규 학교생활을 일반적으로 이수한 게 아니잖아요. 아주 보편적으로 학교 다닌 건 중학교 때 끝났어요.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 가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제가 특별히 학구적이거나 지적인 허영이 아니고, 그냥 학교 다니는 자체가 좋고 즐거웠던 거 같아요. 학위 반납이요? 최종적으로 인생의 목표가 교수는 아니니까 아쉽지는 않아요. 제작발표회 전날 하고 싶은 얘기들을 글로 썼는데 엄청 길더라고요.(웃음) 정말 축약하고 축약해서 얘기한 거예요. 제 잘못이니까 당연히 인정하고 말씀드리는 게 맞죠."
이날 역시 김혜수는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스스로의 행동에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인정할 것은 과감하게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직장의 신'에서 하차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잘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스김을 통해 희망을 찾았고, 대리만족을 느꼈으며, 큰 웃음과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필(FEEL)이 왔단다.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시놉시스가 굉장히 두꺼웠어요. 그래서 대본을 먼저 봤는데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대본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회사 대표에게 '난 이거 하는 걸로'라고 문자를 보냈어요.(웃음) 연기를 하면서는 일부러 코믹 연기를 하려고 의도한 적은 없어요. 제가 직관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일단 대본이 탄탄했고, 수위를 조절하고 요리할 수 있는 연출자가 있었기 때문이죠. 매우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자로서 자주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잖아요."
김혜수는 아직도 미스김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한 듯 보였다. "자꾸 생각나고 보고싶다"고 털어놨다. 많은 시청자들이 슈퍼갑 계약직 미스김이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김혜수 역시 미스김이 어딘가 있고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는 "많은 분들이 미스김을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너무 그립다"고 고백했다. 비록 '직장의 신'은 끝났지만 미스김은 앞으로 오랜 시간 대중들과 김혜수의 가슴 속에 자리할 것처럼 보인다.
유수경 기자 uu84@
사진=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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