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나의 부족한 점을 잘 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
거신(巨神)의 진격은 멈추지 않는다. 주변의 조소나 비난에도 흔들림은 없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겠다는 각오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다.
김신욱은 196㎝의 신장을 앞세워 압도적 제공권을 자랑한다. 여기에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발재간까지 겸비했다. 학창시절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던 덕분이다. 여기에 부단한 노력이 더해졌다. 2009년 프로 데뷔 직후 뒤늦은 공격수 전업에도 그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근거다. 태극마크는 순전히 노력의 결과였다.
대표팀의 김신욱은 명암(明暗)이 있다. 주로 찬사를 보내는 쪽은 지도자와 동료들이다. 울산 시절 동료인 이근호는 "키가 큰 선수는 가운데서 중심을 딱 잡아주기 때문에 양쪽으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라며 "제공권 뿐 아니라 발기술도 좋은 공격수"라며 그를 칭찬했다.
지난 3월 카타르전(2-1 승)을 지켜봤던 최용수 FC서울 감독 역시 "주변에선 부진했다고 하지만, 공격수 출신이자 지도자의 눈으로 보기엔 대단했던 활약"이라며 김신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밀집 수비를 뚫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김신욱은 그를 위한 미끼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반전에 그나마 기회를 잡은 것도 김신욱이 엄청나게 뛰어다니며 제공권을 장악해준 덕분"이라며 "이동국과 함께 전방에서 수비수를 끌어 모은 덕분에 측면 자원들도 숨통이 트였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인터넷 공간에서 그는 '키만 큰 선수'란 비난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득점이 부족했다. 김신욱은 최강희호 출범 이후 A매치 8경기(선발 3회)에서 1골에 그쳤다. 골로 말하는 최전방 공격수로선 분명 아쉬운 수치. 특히 선발 출장했던 카타르전 전반 15분, 구자철의 '킬 패스'를 골키퍼 1대1 기회로 연결하지 못한 장면은 조소의 먹잇감이었다.
축구 A대표팀이 소집된 27일 파주 트레이닝센터(NFC). 엇갈리는 찬사와 비난 속에서도 김신욱은 변함없이 대표팀 24인 명단에 포함됐다. 소집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 그는 "나의 부족한 점을 잘 안다"라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에도 담당할 몫은 다르지 않다. 김신욱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의 전략은 대부분 비슷하다"라며 "아래로 내려앉아 수비에서 좀처럼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밀집 수비에 고립되지 않는 활발한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라며 "내가 최전방에서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 상대 수비를 혼란시키는 역할을 잘 해낸다면 충분히 상대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골이다. 선수 본인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골 결정력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 이번엔 반드시 골로 활약을 말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K리그 클래식에서 좋은 모습(12경기 7골)을 보여 왔기 때문에 경기 감각은 살아있다"라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결의를 드러냈다.
중동 원정에 대한 부담도 없다. 그는 "레바논 원정은 그라운드 사정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열악한 환경"이라면서도 "울산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중동을 많이 경험했기에, 큰 부담은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그의 유일한 최종예선 득점도 지난해 6월 카타르 원정에서 나왔으며, 지난해 AFC챔피언스리그 알 힐랄(사우디)과의 8강 원정에서 골을 넣으며 4-0 대승을 이끌었다.
김신욱은 "중동 선수들은 조직력이 약한 편"이라며 "(손)흥민이, (지)동원이와 함께 좋은 활약으로 상대 조직력을 무너 뜨리겠다"라며 자신있게 말했다. 아울러 '중동킬러' 이근호와의 호흡에도 기대감을 밝혔다. 그는 "(이)근호형과는 울산에서 함께 아시아 무대 정상에 올랐다"라며 "그 때 보여준 빅 앤 스몰 조합을 대표팀에서도 재현해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10여분간의 짧은 대화에서도 김신욱의 표정에선 우직함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공격수 김신욱'을 키운 원동력도 그것이었다. 신인 시절 갑작스런 공격수 출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에 그는 온갖 비아냥을 받았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땀을 흘렸고, 결국 국가대표 공격수로 성장했다. 이번엔 월드컵 본선행의 최종 관문 앞에 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김신욱은 또 한 번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의구심보다는 기대감을 보낼만한 '진격의 거신'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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