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서동욱(넥센)은 4월 24일 잠실구장 밤을 잊지 못한다. LG의 패배도 자신의 부진 탓도 아니다. 6년째 입은 줄무늬유니폼을 벗게 됐다. 소속팀이 한순간 바뀌었다. 포수 최경철과 맞트레이드돼 넥센 선수가 됐다. 한 달여가 흘렀다. 서동욱은 당시 청천벽력을 어떻게 회상할까. 솔직한 심경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서동욱과 일문일답
넥센에 둥지를 튼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모든 적응을 마쳤다. 팀 분위기가 좋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굉장히 자유롭다.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룰은 경기에만 맞춰져 있고. 아직 백업이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생애 두 번째 이적이다. 처음과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은 비슷했다. 서운하고 죄송하고 어리둥절하고. 생각해보니 다른 감정은 같은데 어리둥절함이 더 짙었던 것 같다. KIA에서 LG로 옮길 땐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다. 이번은 달랐다. 프로세계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알다 보니 충격이 꽤 크게 다가왔다.
이적 소식을 언제 처음 접했나.
이적된 당일 경기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정)성훈이 형이 다른 구장 스코어를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켰는데 내 이름이 실시간검색어에 올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트레이드 기사를 보여주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구단 매니저가 코칭스태프실로 가보라고 했다.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니 김기태 감독을 제외한 모든 코치가 있었다.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조계현 수석코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팀 사정상 너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미안하다”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트레이드가 믿겨졌다.
당황스러웠겠다.
(고개를 가로저으며)처음엔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코치들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 한편으론 무척 고맙더라. 기분 좋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나를 위해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제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동료들도 많이 아쉬워했을 텐데.
(오)지환이가 가장 슬퍼했다. 너무 울먹여 오히려 내가 위로했다(웃음). 입단 때부터 따라준 사랑스런 경기고 후배다. 룸메이트로 지내며 정이 많이 들었다. 나 역시 이별이 서운하고 안타까웠다.
김기태 감독과도 따로 얘기를 나눴나.
물론이다. 나보다도 아내 걱정을 많이 했다.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내성적이고 꼼꼼한 분이다. 평소에도 선수들의 가족을 챙긴다. 붉어진 눈시울로 미안하게 됐다고 하는데 가슴이 찡했다. 따뜻하게 안아준 그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 인사도 기억하나.
넥센 이적을 야구인생의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감사드린다고도 했고.
LG 팬들에게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더 잘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죄송할 뿐이다. 5년 이상 지내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응원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적하던 날 마지막까지 주차장에서 배웅을 해준 팬들이 생각난다. 몇몇 분께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우는데 마음이 아팠다. 짧은 시간 선물을 급조해 챙겨주는 모습에 더없이 큰 감동을 받았다.
팬들의 배웅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 같은데.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고민했다. 애써 미소를 보였는데 팬들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위로했다. 함께 기다리던 아내를 다독여주기도 했고. 생애 가장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
바로 짐을 챙겨 나오지 않았던데.
차마 짐을 들고 나올 수가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날 어렵게 다시 라커룸을 찾았는데 프런트와 동료들이 일찌감치 야구장에 나와 끝까지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가슴이 짠했겠다.
고맙고 미안했다. 그런데 참 재밌더라. 짐을 챙기는데 2군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곧장 목동구장으로 넘어왔다.
염경엽 감독, 코치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긴장이 되진 않더라. 모두가 반갑게 맞아줘서. 오히려 부담이 생겼다. 난생 처음 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웃음). ‘내가 이 정도의 선수였나’란 생각이 들면서도 “야구 못해서 트레이드된 건데 이렇게 관심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넥센에 이전부터 친했던 선수가 많다고 들었다.
이적 당일 (이)택근이 형, (허)도환이, (이)성열이에게 전화가 왔다. 모두 운동하기 좋은 구단이니 편하게 마음을 먹으라고 했다. 그 덕에 긴장이 많이 풀릴 수 있었다.
그날 염경엽 감독으로부터 따로 주문을 받았는데.
강진으로 내려가지만 빠르면 2주 늦으면 한 달 이내 1군에 올리겠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컨디션을 조절하라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려간 지 하루 만에 몸을 만들었다. 4월 27일 상동구장에서 열린 롯데 2군과 퓨처스경기에 바로 투입됐는데 성적이 꽤 좋았다.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이었다.
강진구장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솔직히 좋았다. 야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춰서. 야구장이 4면이나 있다. 2010년 말 교육리그 소화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실력을 끌어올릴 자신이 생겼다.
마음을 비워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닐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목동구장과 멀리 떨어졌단 점을 제외하면 강진구장만큼 좋은 곳이 없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으니까. 외야 수비를 보는데 팔뚝만한 뱀이 그라운드에 난입할 정도다(웃음).
그 뱀은 어떻게 됐나.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밖으로 치웠다. 정확히 말하면 매니저들이 막대기로 집어 쫓아냈다. 그래도 강진구장에 대한 기억은 맑음이다. 바람만 쐬고 와서 그럴지도 모르지만(웃음).
②편에서 계속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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