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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남현동 '미당 집'..시인에게 드리운 자취와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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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남현동 '미당 집'..시인에게 드리운 자취와 그늘 미당 집은 미당이 1970년 공덕동에서 이주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집은 소박하고 단촐하며, 꾸밈이 없다. 질마재신화가 이곳에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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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생가와 무덤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세계적인 명소다. 톨스토이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산책로며 생가 주변의 농장을 둘러보러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든다. 비단 톨스토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종종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여러 지자체가 지역문인의 문학관을 만들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는 있다. 허나 지자체장 치적용, 전시용으로 포장돼 오히려 문인의 삶을 흐리는 일이 다반사다. 서울에도 작가, 시인들의 삶이 곳곳에 스며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훼손되거나 소멸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겨우 관악구 남현동의 '미당 서정주 집'이 보존돼 있고, '풀의 시인' 김수영문학관이 도봉구에 설립 중인 정도다.

미당 집이 겨우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뀐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집은 관악구가 매입, 2010년 12월 리모델링해 일반에 공개했다. 당시 숱한 곡절과 논쟁이 있었다. 관악구의회 내에서도 미당의 친일문제로 한동안 보존을 결정하지 못 하는 등 갈등을 겪었다.


현재는 공익요원 두 명과 공무원 한 명이 관리한다. 하루 평균 20∼30여명이 찾는다. 주로 등산객이 많다. 간혹 미당의 제자들이 찾아와 시낭송회를 열기도 한다. 미당의 집은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사당초등학교 방향으로 언덕을 10여 분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남현동 주택가 한복판에 '서정주의 집'이라는 간판이 나온다. 간판은 푸른 색 바탕에 흰 글씨로 써 있다. 집은 동향에 2층 양옥이다.

마당에는 미당이 직접 심었다는 소나무, 감나무, 철쭉이 봄볕에 생기를 내뿜고 있다. 또 한편엔 작은 쉼터가 있다. 이곳은 방문객이 다리쉼을 하거나 간혹 시낭송회를 여는 공간이다. 미당은 1970년 서울시의 예술인마을 조성계획에 따라 공덕동에서 이주해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집은 미당이 직접 설계했다. 그가 그린 평면도가 거실 벽면에 그대로 걸려 있다. 소박한 풍모가 엿보인다.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미당은 직접 실측하고 건축재료도 일일이 기록할 만큼 꼼꼼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집은 1969년 10월 공사를 시작, 이듬해 봄에 완공했다. 1층은 22평 남짓. 두개의 침실과 거실, 주방으로 이뤄져 있다. 주방은 서편에 위치하며 거실과 분리돼 있어 안주인의 살림살이가 외부로 전혀 드러나지 않게 돼 있다.

[서울스토리]남현동 '미당 집'..시인에게 드리운 자취와 그늘 미당은 테이블에 앉아 관악산을 바라보거나 마당의 철쭉을 감상하기도 했다. 때론 사당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시를 썼다.


주방의 식탁에는 미당이 마지막에 마셨던 캔맥주가 놓여 있다. 미당은 평소 맥주를 즐겼다. 미당의 건강을 걱정한 며느리가 간혹 무알콜로 몰래 바꿔놓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의 맥주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2001년 10월10일 부인 방옥숙 여사가 임종하자 미당은 곡기를 끊고 거의 맥주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부인 임종 두 달 뒤인 12월24일 30년 동안 정들었던 집을 영원히 떠났다. 미당은 맥주 외에도 난초와 가야금, 파이프 담배를 무척 좋아했다.


안방엔 두루마기와 넥타이, 한복 등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미당은 주로 2층 서재에서 명상과 창작을 하며 지내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안방을 썼다고 한다. 침실 하나는 관리실로 쓰고 있다.


2층에 올려서면 미당의 육성이 은은히 울려 퍼진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와 말년을 보내는 모습을 주로 얘기하고 있다. 2층은 20여평 규모로 서재와 침실, 작은 거실로 이뤄져 있다. 서재는 단촐하다. 테이블과 의자 하나, 문갑, 책장 등이 검소하게 놓여 있다.


미당은 창가에 놓인 테이블에서 멀리 관악산이나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뜰에 피는 꽃을 보기도 하고, 사당초등학교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작품활동을 했다. 바로 이 테이블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팔할이 바람', '질마재 신화' 등이 탄생했다. 책장, 책상, 의자, 문갑, 보료, 좌탁, 서적류, 도자기, 고재 파티션은 모두 모형이다. 도자기는 고창 미당시문학관에 소장돼 있는 전시품을 복제한 것이고, 책들은 동국대학교에서 기증받은 것이다.


미당이 평소에 썼던 유품들은 주로 2층 거실에 전시돼 있다. 라이터, 구두주걱, 손톱깍기, 안경, 담배 파이프, 돋보기 등이다. 그중에서도 뿔나팔 하나가 눈길을 끈다. 미당은 평소 방문객이 오면 "차를 내오시게" 혹은 "술상을 좀 봐주게"하는 대신 2층에서 종을 흔들거나 뿔나팔을 불었다. 뿔나팔은 세계 여행 중에 스위스에서 구입한 것이다. 또 한편에는 세계의 산 이름과 높이를 적은 메모가 놓여 있다. 모두 1625개의 산 이름이 수록된 메모는 기억력 상실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서울스토리]남현동 '미당 집'..시인에게 드리운 자취와 그늘 외관은 화강암 패널로 마감해 다소 육중한 느낌을 준다. 미당은 이 집을 직접 설계, 실측하며 건축비를 아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미당 집은 전체적으로 꾸밈 없고, 소박하다. 미당 집에서는 미당 문학의 향취를 만끽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유품이 생가인 전북 고창 '미당문학관'에 있는 탓이기도 하려니와 미당문학의 한 부분만을 전시한 것도 이유일 수 있다.


미당이 위대한 시인이라는 데는 대개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친일행적과 독재와의 유착, 우익적 태도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친일과 관련, 미당은 1992년 월간 '시와 시학'에서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자신을 변론한 바 있다. 미당의 속죄는 알량하고, 대문인답지 못한 변명에 가깝다. 그런 연유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그의 문학은 후배 문인들을 여전히 아프게 짓누른다.


미당은 친일에 그치지 않고, 이승만 전기를 집필했고, 광주 항쟁 이후 1981년 전두환을 위한 TV찬조 연설에 나서고, 6월 항쟁 직전에는 '4.13 호헌조치'를 구국의 결단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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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문인들이 미당을 찬사와 경배만이 아닌 눈길로 바라보게 하는 대목이다. 미당은 70여 동안 1000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 세계는 고조선에서 현재, 질마재에서 킬리만자로에 이른다. 관악구 남현동 '서정주의 집'에는 그의 행적과 관련,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전시돼 있지 않다.


그래서 후세에 제대로 된 교훈을 삼기보다는 관악구 홍보용 기념관으로 포장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영진 시인은 서정주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문학과 행적을 나눠서 평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워낙 완곡한 의견이지만 후배 문인들의 고민이 얼마나 큰 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문인의 삶과 문학작품이 별개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눠야할 정도로 미당의 삶을 외면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의 문학이 위대하다는데 있다. 따라서 미당을 기리는 방식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물론 유족, 문단이 다시 한번 고민해야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 적어도 미당문학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끌어 안아야말 할" 숙명인 까닭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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