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만원의 행복'은 더 이상 힘든 걸까. 만원으로 장보기가 두렵다. 삼겹살 한 근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예전에는 만원이면 삼겹살은 물론 상추에다 곁들여 먹을 버섯에 소주까지 살 수 있었다. 삼겹살 상차림으로만 놓고 보면 한국인은 불행해졌다. 그러나 더 불행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신한금융투자는 20일 그 주인공으로 1923년의 독일인들을 꼽았다.
1923년 독일의 물가 상승은 살인적이었다.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불리는 당시 물가 상승은 마르크화의 가치 폭락으로 촉발됐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독일 마르크화 가치 절하의 배경으로 전쟁배상금과 부족한 물자, 방만한 재정정책, 영토분쟁에 따른 전쟁 가능성 등을 들었다.
곽 애널리스트는 "1918년 50페니히(0.5마르크)였던 빵 한 개 가격은 1923년 17억마르크가 됐다"며 "독일의 가정 주부는 수백만마르크 지폐를 난로의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아이들에게 돈뭉치는 장난감이었다"고 설명했다. 돈 바구니를 깜빡 놓고 오면 돈뭉치는 그대로 있고 바구니가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독일인은 우유 하나를 사러 가기 위해 돈 수레가 필요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독일은 이 위기를 연합국과의 협상과 1923년의 화폐 개혁을 통해 타개한다. 하지만 상처는 깊었다. 이같은 트라우마로 독일은 '빚 내서 재정을 방만히 운영하는 국가들'에 대한 비난 강도가 유난히 높다. 해봐서 알기 때문이다.
곽 애널리스트는 "유럽중앙은행(ECB) 통화 정책에 대한 깐깐한 간섭 역시 납득 가능하다"며 "더욱이 독일은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키프로스 등 위기국에 구제금융에 앞서 강력한 의무 수행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9월 총선을 감안할 때 독일의 적극적인 위기국 지원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재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부추겨 글로벌 증시 조정을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빚을 싫어하고 인플레이션은 더욱 싫어하는 독일인에게 9월까지는 관용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유리 기자 yr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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