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대신 프로스트 詩로 표현한 재도약 의지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잠자기 전 가야할 먼 길이 있다."
지난 달 말 취임한 이윤호 쌍용양회 신임 대표가 시(詩)를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을 피력했다. 4월 사내웹진에 실은 '쌍용양회 신임 공동대표이사 사장이 취임에 즈음하여 추천하는 시'를 통해서다. 그가 추천한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였다. 장문의 취임사 대신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압축한 한 편의 시를 임직원들에게 띄운 것이다.
쌍용양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임직원들한테 흑자기업과 적자기업이 다른 만큼 성과나 실적을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하고 있다"며 "취임사 대신 추천한 이 시 역시 그런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프로스트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이 시는 시골 풍경과 인생에 대한 명상을 과장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한 게 특징이다. 특히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로 시작해 마치 한 편의 풍경화를 보듯 표현한 시구가 '잠자기 전 가야할 먼 길이 있다'로 맺으면서 자아성찰을 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투영됐다. 이 대표 역시 마지막 문구에 감동받고 임직원들과 함께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고 재도약하자는 의미에서 취임사 대신 이 시를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에게 잠 자기전 마지막 가야할 길은 바로 '쌍용양회'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쌍용양회에 입사한 이 대표는 정통 '쌍용맨'이다. 쌍용양회에서 해외사업팀장, 기획팀장, 기획담당 임원 및 영업본부장 등을 거친 후 2009년 쌍용정보통신 사장에 취임, 3년 연속 흑자를 통해 10년간 지속돼온 자본잠식을 완전히 해소하는 등 경영능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새로 수장을 맡은 쌍용양회에서의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지난해 순이익 131억원을 기록,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누적적자가 2000억여원에 달해 '적자 기업'이란 꼬리표가 달려있다.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시멘트 가격을 지난해보다 10% 오른 8만1000원선으로 올릴 계획이지만 이 역시 신통찮다. 레미콘ㆍ건설업계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10년만에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전방사업인 건설업도 장기 침체를 겪고 있어 장밋빛 전망을 하긴 힘들다.
이 대표의 어깨에 이처럼 무거운 과제가 둘러메진 상황에서 프로스트의 시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새로운 50년의 역사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올해 누적적자를 털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50년의 생존을 자신하기 힘들다는 절박함에서 이 대표가 시를 통해 위기극복 의지를 다지자고 주문한 것이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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