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을환 어린이도서연구회 상임이사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 마포 서교동에 소재한 '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아동용 슬리퍼와 여성용 신발이 빼곡하다. 사무실은 한적한 주택가의 양옥집을 개조, 사용해서인지 마을 사랑방 같다. 입구와 가까운 방에선 회원들이 토론하는 소리가 나즈막하게 퍼져 나왔다. 이런 사무실 공간은 33년간 이어져 온 연구회의 순수성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여을환 상임이사는 "주부, 학교 도서관 사서, 교사 등이 주축이 돼 1980년부터 모임을 진행해왔다"며 "외부의 간섭이나 지원 없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연구회를 소개했다.
연구회는 전국 100여개의 어린이 독서 모임, 2500여명의 회원으로 이뤄진 단체로 매달 회원들이 내는 회비(1만원)로 운영한다. 회원들은 자원 활동가로 아동 독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마다 모임을 이끌기도 하고 '어린이 도서 선정' 작업, 각종 어린이 독서회 활동에 참여한다. 또한 독서 진흥 활동 외에 '기적의 도서관' 혹은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작은 도서관' 등에서 독서 문화 정착에도 기여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어린이에게 유익한 도서'를 선정하는 작업이다. '좋은 어린이 도서'는 150여명이 참가하는 선정 위원회가 토론, 합의를 거쳐 선정한다.
이와 관련, 여 상임이사는 "선정 목록은 어떤 상업적 이해와 무관하게 작성된다. 선정 주체와 기준을 명확히 밝혀 공신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일반 가정과 학교 도서관, 각종 모임 등 독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선정 위원회의 토론과 합의 정신은 연구회의 생명이고 철칙으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어린이 도서 및 독서 실태를 파악, 올바른 독서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책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 프로그램 운영 등도 연구회의 역할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책을 읽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학교에 가면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책을 많이 읽어야할 시기에 책을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며 어린 시절의 독서 습관은 평생을 좌우한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줄 수 있도록 부모부터 바뀌어야 한다."
여 상임이사는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독서는 많이 읽게 하는게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책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여 상임이사는 고등학교 3학생인 자녀에게 지금도 책을 읽어준다. 여 상임이사는 "듣는 것도 독서 방법이며 책의 즐거움을 나누는 게 독서의 진정한 문화"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연구회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은 악화 일로다. 이는 출판 산업 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어린이 도서는 80년대 해적판 전집으로부터 시작해 90년대 중반 단행본 출판 붐 등에 힘입어 출판 위기에도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해 왔다. 하지만 최근 출판시장이 압박을 받고, 양극화ㆍ대형화 등으로 급격히 개편되면서 출판산업 위축, 독서문화 후퇴 등 수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여 상임이사는 "조속히 도서정가제를 정착돼야 양질의 어린이 도서가 풍부하게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며 "책을 사랑하는 문화를 통해 지식사회로의 이행을 추구해야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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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진행되는 독서진흥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많다. 여 상임이사는 "지자체 등에서 독서 관련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전시적이고 일회적인 활동으로 현장과 괴리된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며 "정책이나 독서 프로그램을 작용할 때는 현장 활동가들과 함께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간혹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독서진흥 프로그램 지원 요청이 있어 가 보면 실질적인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는 사업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연구회의 자원활동가들이 어린이 독서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공공 도서관, 어린이 공부방, 아동센터, 학교 현장 등에서도 중복적인 프로그램 운영, 성과 위주의 행정, 과도한 인프라, 책 부족 등 의 문제도 조속히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았다. 여 상임이사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통해 삶을 가꾸고 나누는 문화공동체가 만들어지는데 연구회가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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