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삼성그룹이 13일 2013년 대졸 신입 공채 계획을 발표하면서 예년과 달리 채용 규모를 확정지어 발표하지 않았다. 투자 계획 발표도 없었다. 경기 상황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경기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시나리오 경영에 돌입했기 때문에 한해 전체 투자나 채용규모가 의미가 없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글로벌 경영환경은 물론 청와대의 기류와도 관련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올해 채용 규모는 별도로 발표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난해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며 "하반기 경기회복 여부에 따라 추가로 채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자와 관련해서는 "삼성전자가 연초에 올해 투자는 경기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삼성그룹 전체의 입장도 같다"면서 "별도 투자 계획을 발표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이 같은 입장은 환율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다 북한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 청와대 기류 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시나리오 경영에 돌입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스마트폰에 집중돼 있고 경기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설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PC 경기가 침체되며 D램 수요가 줄었고 디스플레이는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대형 패널의 성장성이 아직 기대에 못 미쳐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신규 시설 투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에는 투자를 집중하고 있지만 전체 투자 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투자 비용 중 70%는 시설 투자비에 속한다. 연구개발비가 대폭 늘어난다 해도 시설 투자가 줄어들면 전체 투자 비용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여건상 계획했던 투자 규모를 다 집행하지 못할 정도로 경기 변동성이 심했는데 올해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섣불리 투자 계획을 내 놓기 보다는 경기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별도로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이 늦어지고 있는 점도 투자나 채용규모를 확정짓지 못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다 보니 정부의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데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범, 중기적합업종 등 경영상황이 녹록치 않아 투자와 채용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전자, 자동차 등 주력 수출 산업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 목표와 지원책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투자 및 채용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항상 가장 먼저 나서서 투자를 독려하던 삼성그룹이 투자는 물론 채용에 있어서도 한발 물러서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데는 정치권의 불안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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