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대학생 이성희씨는 지난해 스타벅스에서 1만4000원짜리 플라스틱 텀블러를 샀다. 마트에서 파는 5000원짜리 일반 텀블러와 용도ㆍ기능면에서 다를바 없지만 스타벅스 로고가 들어 가있다는 것만으로도 3배 비싼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쯤 사용했을 무렵 텀블러의 밑단 마개가 떨어져나갔다. 더 놀라운 것은 플라스틱 텀블러 안에 말아놓은 스타벅스 로고 종이가 쑥 빠져버린 것. 이 종이가 빠져버리니 5000원짜리 플라스틱 텀블러보다 초라해졌다. 이씨는 "스타벅스라고 적힌 이깟 종이 한 장 때문에 가격이 두 세배 이상 뻥튀기 된 걸 샀다"며 "이런 것을 수집하는 마니아도 많다고 하는데 상술에 놀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벅스의 한정판 텀블러가 상술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불황에도 '가치소비'를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데 스타벅스가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이용해 텀블러, 머그컵 가격을 뻥튀기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판매한 텀블러, 머그컵 등의 매장 아이템 매출액은 110억원 가량이다. 이 중 플라스틱 텀블러 매출액만 49억원이다. 총 매출액 2900억원의 4% 미만에 해당하는 규모이지만 커피량으로 환산하면 만만치 않다. 한 해에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 275만잔, 하루 7500잔의 매출을 텀블러, 머그컵 판매로 메웠다는 얘기다.
지난 1일 스타벅스는 삼일절을 맞아 국화인 무궁화를 메인 디자인으로 한 무궁화 텀블러를 총 3010개 한정 판매했다. 개당 1만4000원인 이 제품은 출시 단 하루만에 완판됐다. 일부 매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무궁화 텀블러를 구매하기 위한 고객들로 장사진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제품은 판매 이후 웃돈까지 얹어져 거래되고 있다. 한정판 무궁화 텀블러가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두 배 이상 비싼 3만~3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스타벅스는 최근 계절 텀블러로 '나비 텀블러'를 출시했고 오는 15일에는 '체리 블러썸 텀블러'도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제품은 한정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제한 수량을 찍어낼 예정도 아니어서 수량이 거의 매진돼 '희소품'이 되면 이 역시 수집가들 사이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한 해 동안 텀블러, 머그컵을 200종류 선보였다. 기념일을 맞아 한정판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무궁화 텀블러가 2번째다. 반면 엔제리너스의 경우 지난해 출시한 머그컵은 5종, 텀블러는 9종이었다.
직장인 최모씨는 "스타벅스의 브랜드 파워가 월등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이용한 상술이 정도를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며 "맹목적인 명품 지상주의가 스타벅스로 번져 '샤테크'같은 '스벅테크'로 변질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이라면 소비자들을 애태우지 않고 10만개, 100만개 만들고 제품도 1만4000원짜리가 아니라 3만~4만원대인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팔았을 것"이라면서 "순수한 '기념'을 위한 의도로 제작하는 한정판 텀블러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한정판의 수익금 일부는 문화재단 등에 기부한다"면서 "지난해에도 텀블러 수익금 중 1000만원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기부했고 이번에 출시한 텀블러들도 개당 500~1000원씩 기부된다"고 강조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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