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FC서울의 외국인 F4(판타스틱 4) 데얀·몰리나·아디·에스쿠데로는 팀에서 특별한 존재다. 탁월한 기량 때문만이 아니다. 웬만한 국내 선수보다 팀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다. 경험은 말할 나위 없다.
데얀과 몰리나는 지난 시즌 뒤 수많은 해외 클럽의 이적 제의에도 망설임 없이 잔류를 결정했다. 아디는 고명진·고요한 등 유소년 출신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뛴 선수다. 에스쿠데로 역시 서울 유니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단순히 '외인(外人)'이나 '용병'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들은 팀 전성기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FC서울은 네 선수와 함께 정규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등을 기록했다. 지휘봉을 휘두른 감독은 이장수·세뇰 귀네슈·넬로 빙가다·황보관·최용수 등 다섯 명이나 된다.
다양한 경험을 갖춘 그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돌려줄만한 질문을 던졌다. ‘최용수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FC서울을 거쳐 간 선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누구인가.’ 역시나 돌아온 답변은 진중하면서도 유쾌했다.
▲ 독수리는 못 말려
데얀: 최용수 감독님? 아휴. 오케이. 다음 질문. (폭소) 농담이다. 감독님은 축구 선수 출신이고, 특히 J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 처지를 더 많이 이해해주고, 존중해준다. 그러다보니 우리도 감독님께 나쁘게 대할 이유가 없다. 또 코치로 오래 생활했기에 이전 우리 팀을 거친 감독님들의 장점도 두루 배운 것 같다.
몰리나: 나도 여러 나라 지도자를 겪어봤지만, 감독님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서 뛸 수 있게 영감을 불어넣을 줄 아는 분이다.
아디: 난 선수로도 같이 뛰어봤고 코치로도 대해봤기에 감독님의 모든 점을 다 잘 알고 있다. 선수로서도 최고였고, 지도자로선 지난해 우승으로 역량을 보여줬다. 또 선수들의 캐릭터를 낱낱이 잘 알고 있어 우리에게 편하고 참 좋은 분이다.
에스쿠데로: 일본에 계실 때도 유명했다. 매년 J리그 득점왕 후보로 꼽힐 정도였으니까. 작년에 그런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동료들에게) 아참, 작년 우승 세리머니할 때 감독님 말 타고 나왔던 거 기억나?
몰리나: (손사래 치며) 말도 마. 그 경기 2~3일 전에 감독님이 나한테 말 타고 나올 거라고 하더라. 처음엔 속으로 '에이, 설마, 미쳤어?'라며 안 믿었어. 워낙 장난을 잘 치는 분이니까. 그런데 진짜 타고 나오더라! '아, 이건 꿈일거야...'했어.(일동 폭소)
에스쿠데로: 그 때 우리가 뿌린 샴페인에 말이 놀라서 펄쩍 뛰는 바람에 감독님 얼굴이 파래졌지. 너무 재밌었어.
데얀: 그 때 내가 끝까지 뿌렸지.(웃음) 이제와 고백하는데 사실 감독님이 '노노노노'하는 것도 말이 뛰는 것도 못보고 그냥 신나서 샴페인 뿌려대고 있었어. 정말 위험했더라고. 감독님 나이도 많은데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나도 진짜 놀랐었어. 감독님 죄송했어요. (웃음)
▲ FC서울 최고의 한국 선수는?
데얀: 이건 아디가 좀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2006년부터 서울에서 뛰었으니까.
아디: 음.. 글쎄. (잠시 고민하더니) 대성!
일동: 그래, 하비! (하대성의 팀내 별명. 바르셀로나 사비와 플레이 스타일이 닮았다는 이유로)
몰리나: 같이 뛰다보면 정말 엄청나. 기술, 피지컬, 힘 뭐하나 부족한 게 없어. 무엇보다 경기장 전체를 볼 줄 알잖아. 쉽게 말해 팀 전체를 끌고 가는 선수야.
데얀: 그런데 도대체 대성이 왜 대표팀에 안 뽑히는 거지? 예전 인터뷰에서 몇 번 얘기했던 건데, K리그 챔피언은 서울이잖아. 그런데 정작 선수들은 대표팀에 못 들어가. 대성, (고)명진, (정)조국이 국가대표가 아닌 건 백번 양보해도 이해가 안 돼. 셋 다 유럽 5대 리그에서 뛰어도 충분한 선수들인데. 정말 아쉬워. 아, (최)태욱도 지난해 훌륭했고, (김)진규는 대단한 수비수인데 말야. 말해놓고 보니 우리 팀에 좋은 선수가 정말 많다.
에스쿠데로: 맞아. 난 서울에 온지 얼마 안됐지만, 처음 왔을 때 한국에 이렇게 좋은 선수가 많은가 싶었어. J리그에선 아시아 선수 보면서 ‘잘한다’라며 감탄했던 경우가 별로 없었거든. 난 (김)주영이도 눈에 띄더라. 일본 대표팀에 마르쿠스 툴리오를 보는 것 같아.
데얀: 예전에 같이 뛰었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는 말할 것도 없지.
아디: 셋 다 톱클래스의 선수들이잖아. 지금 선수들과도 즐겁지만, 셋과 함께 뛰던 2008년엔 정말 행복했어.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