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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2장 혜경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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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2장 혜경이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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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혜경은 <은하헤어살롱>에서 뚱뚱한 여자 손님의 염색을 해주고 있다가 하림을 보더니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하림 선생! 마침 잘 왔어. 우리 은하 어린이집에 갔는데 오는 차가 없대. 좀 데려와 줘!”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들은 하림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미장원 문 앞에서 잠시 우물거리며 서있었다. ‘혜경아, 사랑해! 하림이가.’ 하는 카드와 함께 든 노란 털장갑 선물을 전해주겠다고 왔는데, 엉뚱한 소리를 듣는 바람에 엉거주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분위기 있게 전달하고, 분위기 있게 감동하기엔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중에 다시 만나 주기도 그렇고 하여 하림은 주머니에서 포장한 것을 꺼내어 혜경에게 내밀었다.


“이거....”
“뭔대?”
혜경이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별 거 아냐. 그냥, 시내 나갔다가....”
“선물이야? 웬 선물.....?”

혜경은 여전히 의아스런 표정으로 하림이 내민 것을 받았다. 그리곤 곧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와! 웬일이야? 하림이한테서 선물을 다 받아보고..... 하여간 고마워!”
하고 감탄사를 쏟아내었다.
“별 거 아니라니까. 이따 뜯어 봐.”
하림은 쑥스런 미소를 한번 지은 다음,
“은하 데리러 갈게. 은하 데려다주고 또 나가봐야 돼. 오후 늦게 친구랑 약속이 있거든.”
하고 묻지도 않는 대답까지 하고는 얼른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차 세워 둔 곳으로 걸어나왔다.


“장하림, 고마워!”
혜경이 그의 등 뒤에 대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혜경이 하림을 부를 땐 세 가지가 있었다. 둘이 있을 땐 물론 하림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하림 선생이고, 은하 앞에선 하림 아저씨다. 그때 그때 맞춰서 부른다.
낡은 아반떼 시동을 걸고, 은하가 앉을 수 있게 옆 자리 소파에 놓여있던 것을 뒷좌석으로 던져 정리를 한 다음 골목을 빠져나왔다. 어린이집은 거기서 멀지 않았다. 두 블록을 지나 약간 언덕빼기로 올라가서 다가구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지대 끝 지점 쯤 되는 곳에 있었다. 거기에서 우중충한 시내가 잘 내려다 보였다. 어린이집은 동화 속 그림처럼 뽀족뽀족한 빨간색 지붕과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벽 땜에 금세 눈에 띄었다.


하림은 어린이집 놀이터 앞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은하가 나올 때까지 그네를 타며 기다렸다. 그네는 너무 작아 엉덩이가 거의 땅에 닿을 것 같았다. 엉덩이가 거의 땅에 닿을 것 같은 그네에 꼭 끼워 앉아 건들거리며 하림은 영화 ‘25시’ 를 기억했다. 게오르규의 소설을 바탕으로, 안소니 퀸이 주연을 맡았던 아주 오래된 영화였다.
정직하고, 순박하고, 평범한 루마니아의 농부 모리츠는 2차대전이라는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겪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겪는다. 때로는 유태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때로는 루마니아인 수용소, 때로는 항가리인 수용소에, 그리고 때로는 미군 수용소에 갇히면서 거대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착한 개인이란 한갓 가랑잎처럼 나약하게 굴러다닐 수 밖에 없는 존재란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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