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칸느,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 영화제가 7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17일까지 계속되는 제 63회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총 24편이 초청됐다.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혜원'이 경쟁부문에 올라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두고 경합한다.
개막작은 왕가위 감독의 신작 '일대종사'. 1930년대 일본의 침략으로 혼란을 맞은 중국을 배경삼아 이소룡의 스승이자 중국무술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무술영화다. 양조위, 장쯔이 등 최고 톱스타를 캐스팅했고 한국의 송혜교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과작으로 잘 알려진 왕가위 감독이지만 그 중에서도 '일대종사'에 들인 노력은 손꼽힌다. 완성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소요된 작품이다. 1월 6일 중국 개봉 이후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개막작 상영에 대한 기대감도 증대했다. 상영 이후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가디언은 별 네개와 함께 "무술영화에 대한 특별한 접근"이라며 "무술의 미학과 철학에 대한 놀랄 정도의 영화"라는 평을 내렸다. 기존 무술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정조와 이미지 연출로 완전히 색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다.
이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한 왕가위 감독은 개막작 기자간담회에서 "'일대종사'에 대한 아이디어는 1999년 엽문 관련 필름을 보고 떠올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필름은 엽문의 사망 전인 1972년 슈퍼 8카메라로 3일만에 촬영된 것. 필름 속에서 85세의 엽문은 손주와 고양이와 함께 거실에서 무술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촬영중인 카메라를 보고 순간 멈추어선다. "(엽문은)그 때를 이어가기엔 너무 약해졌거나 너무 지쳤을 테다. 혹은 그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나를 움직였다"는 왕가위의 말이다.
경쟁작 24편의 라인업은 미국과 오스트리아, 벨기에, 폴란드, 이란 등 다양한 국가와 소재를 아우른다. 울리히 자이델(오스트리아)의 '파라다이스: 호프(Paradise: Hope)는 '러브(Love)'와 '페이스(Faith)'로 구성된 파라다이스 3부작 중 하나로 낙원의 불가능성을 포착하는 영화다. 2005년 '방랑자'로 장편 데뷔를 치른 후 캐나다의 대표적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동해 온 드니 코테(캐나다)는 스릴러물 '빅과 플로, 곰을 보았다(Vic and Flo Saw a Bear)'를 들고 베를린을 찾았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여성이 수감 중 알던 다른 여성을 찾아 캐나다의 야생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 이밖에도 브루노 뒤몽(프랑스)는 '카미유 클로델. 1915'에서 정신병원에 유폐된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을 그려낸다. 정신적 문제를 지닌 클로델은 줄리엣 비노슈가 연기한다. 이밖에도 남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감독 피아 마라이스의 '릴라 푸리', 2000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란의 네오리얼리즘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클로즈드 커튼', 칼린 피터 네처(루마니아)의 '차일즈 포즈'등이 기대작으로 꼽힌다. 미국의 구스 반 산트는 에너지기업의 세일즈맨을 내세워 거대기업과 조그만 지역 커뮤니티의 충돌을 그려낸 '프라미스드 랜드'를,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잇는 '비포 미드나잇'을 경쟁부문에 출품했다.
국내 유일의 경쟁부문 진출작은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다. 캐나다로 엄마를 떠나 보낸 여대생 해원의 며칠을 일기체 형식으로 담았다. 2011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이윤기 감독)' 이후 2년만에 한국영화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게 됐다. 홍상수 감독으로서는 2008년 '밤과 낮'이후 두 번째 초청이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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