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예전엔 실력에 비해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30분 남짓한 인터뷰. 안재준은 이 말을 다섯 차례나 반복했다. 그만큼 안재준과 인천 유나이티드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다. 그는 2008년 인천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팀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별명은 '임중용의 후계자.' 인천 팬들이 가장 사랑한 '영원한 캡틴'의 적자로 꼽혔다. 임중용의 등번호 20번의 상속자도 안재준이 예약했었다. 그는 "영원히 인천의 아들로 남고 싶다"란 말을 버릇처럼 얘기했다.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2010시즌이 끝난 뒤 안재준은 전남으로 트레이드됐다. 팬들은 팀의 상징과도 같던 유망주를 팔았다며 반발했다. 반대급부로 데려온 정인환(전북)이 까닭 없는 미움을 받을 정도였다. 그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이적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인천과의 인연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안재준은 올 시즌을 앞두고 다시 인천으로 재이적했다. 공교롭게도 정인환이 떠난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등번호도 20번을 달았다. 책임감 못잖게 설렘이 크다. 분에 넘쳤던 팬들의 사랑에 마침내 보답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돌아온 친정팀에서 조심스레 야망도 품어본다. 다시 안재준에 주목할 때다.
친정팀에 복귀한 기분이 어떤가.
2년 만에 돌아와 행복하다. 예전엔 실력에 비해 너무 큰 사랑을 받았는데, 다시 돌아왔으니 그 때보다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려야겠단 생각이다.
전남 트레이드 당시 충격이 컸던 걸로 안다.
다른 팀에 갈 거란 생각은 전해 해보지 않았다. 2010시즌이 끝나고 목포에서 훈련하는데, 당시 허정무 감독님이 나와 (남)준재를 따로 부르셨다. 처음엔 운동에 대해 얘기하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트레이드됐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인천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가족과 같은 팀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인천으로의 재이적 소식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겠다.
이번에도 갑자기 정해졌다.(웃음) 사실 몇 년 뒤 군대를 가야해 그전에 외국 무대에 한번 도전해볼까란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다른 팀이 아닌 인천으로의 트레이드라 당황스럽지 않고, 정말 좋았다. 재밌게 축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부터 들었다.
인천에 대한 애착이 참 남달라 보인다.
인천은 기업구단에 비해 재정은 여유롭지 않은 대신, 끈끈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 팀컬러를 갖고 있다. 팀 분위기도 정말 좋다. 많은 팀이 인천을 어려워하고, 우리도 나름 자부심이 있는 이유다. 같이 떠났던 준재가 지난해 돌아와 굉장히 잘하지 않았나. 준재가 골 넣을 때마다 화살 세리머니를 해 전화로 '화살 다 떨어진 거 아니냐'라고 농담했는데, 내심 부럽기도 했다.(웃음)
돌아와 보니 무엇이 제일 달라졌나.
(설)기현이형과 (김)남일이형이다. 예전엔 인천에 국가대표가 없었다. 사실 전남 갔을 때도 (이)운재형 만나 정말 신기했는데, 여기 오니 또 신기하다. 모두 TV에서 봤던 형들 아닌가.(웃음) 형들이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는 태도, 몸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게 많다. 아직 말은 많이 못해봤지만 계속 몰래 훔쳐보며 배우고 있다.(웃음)
드디어 등번호 20번을 달게 됐다.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20번이란 번호가 인천에선 그냥 번호가 아니지 않나. 부담스러운 일을 잘 안 하려는 성격이다. 이번에도 웬만하면 피하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남은 번호가 (정)인환이가 두고 간 20번 밖에 없더라. 어쩔 수 없었다.(웃음)
정인환과의 인연도 재밌다. 전남으로 갈 때 트레이드 맞상대였고, 이번엔 그가 떠나면서 인천에 돌아왔다. 사실 정인환이 욕을 많이 먹었다.
내가 워낙 인천팬들에 많은 사랑을 받은 까닭에 인환이가 괜히 피해를 받은 것 같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인환이가 좋은 선수란 걸 알았다. 잘될 줄 알았다. 이젠 내가 인환이 대신 왔으니, 인환이처럼 잘돼야 하지 않겠나.
선수로서 한 단계 올라서려면 어떤 껍질을 깨야 할까.
공격력이다. 이젠 수비수가 수비 뿐 아니라 골도 적극적으로 노릴 줄 알아야 한다. 어느덧 팀 내 중고참이 된 만큼, 리더십도 갖춰야 할 것 같다.
새 시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겠다.
일단 스플릿 상위리그 진입이 목표다. 프로 6년 차인데 아직 우승을 한 번도 못해봤다. 리그는 무리더라도 FA컵 우승만큼은 도전해보고 싶다. 또 청소년대표 이후로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는데, 팀 성적이 좋다보면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인천 유니폼 입고 개막전 홈경기에 나가면 많이 흥분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벌써 소름이 돋는다.(웃음)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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