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박나영 기자]회사돈 수백억원을 빼돌리고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 최태원 회장(53)이 1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31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SK 최태원 회장(53)과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50)에 대해 각각 징역4년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이 지배하는 다수의 유력기업을 범행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경제체제의 성숙도에 미친 폐해에 비춰 엄정 대처할 필요가 있는 점, 재판과정에서 성실한 자세나 진지한 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점, 계열사에 대한 배임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고 사면복권된지 3개월여만에 범행에 나선 점 등에 비춰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금고형 선고시 법정구속이 원칙이며 예외를 인정할 만한 사정 또한 없다”며 최 회장에 대한 법정구속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대기업이 계속적인 여론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게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없듯 SK그룹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 및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영향 또한 영향을 줄 수 없고, 책임을 넘는 형사적 불이익도 있을 수 없다”고 전제했다.
공판을 앞두고 오후 1시 35분께 법원에 도착한 최 회장은 아무 말 없이 곧장 몰려든 취재진을 밀고 청사 중앙로비 통로로 들어가 10여분 뒤 법정에 모습을 보였다. 두 자리 건너 동생 최재원 부회장과 나란히 앉은 최 회장은 재판부가 입장하기 전까지 눈을 감은 채 이따금 방청석을 돌아볼 뿐이었다.
최 회장을 맞는 인파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법정으로 이어지는 구속 피의자 통로 앞에선 “최태원을 구속하라”며 50대 남성이 달려든 반면, 법정 안에선 “회장님, 부회장님 물 한 모금만”이라며 법정 경위를 통해 생수병을 전달하는 SK직원이 있었다.
선고가 이어지며 유죄 판단이 하나씩 늘어가자 최 회장은 붉어진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기도 했다. 선고가 끝나자 최 회장은 “저로서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건 자체를 잘 모릅니다. 말씀드릴건 그 하나”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10월~11월 최 부회장,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과 공모해 SK텔레콤 등 18개 계열사가 베넥스 펀드에 투자한 2800억원 가운데 497억 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2005~2010년 그룹 임원들 성과급을 부풀려 비자금 139억여원을 조성한 뒤 선물투자 손실을 메우는 데 쓴 혐의도 받고 있다.
최 부회장은 이에 더해 계열사 출자금 495억원을 추가 횡령하고 자신이 보유한 비상장사 주식을 그룹 투자금으로 사들여 200억원대 이익을 본 혐의로 저축은행 담보로 그룹 투자금 750억원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22일 결심 공판에서 최 회장에게 징역 4년, 최 부회장과 김 대표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한편 이날 2시 공판을 두 시간도 넘게 앞둔 12시 이전부터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가는 2층 3번 출입구 앞에 긴 행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2시20분쯤엔 이미 늘어선 행렬이 계단을 지나 1층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법정 입장을 앞두고선 SK임직원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정장차림 행렬과 일부 시위자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박나영 기자 bo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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