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우리나라 민간 설화에는 뱀에 얽힌 얘기들이 많다. 상원사 종을 머리로 들이 받아 죽으면서까지 은혜를 갚았던 까치에 얽힌 설화처럼 행운을 가져다 주고 은혜를 갚는 뱀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경기도 용인에는 '은혜를 갚은 뱀'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이 고장에 착한 선비가 살았는데 어느 날 나무꾼이 큰 구렁이를 칡으로 묶어 끌고 가는 걸 보았다. 선비는 구렁이가 불쌍해 나무꾼에게 엽전 한 냥을 주고 구렁이를 산 뒤에 놓아준다. 이 구렁이는 나중에 동자로 변신해 선비에게 황금이 숨겨진 곳을 가르쳐 주고, 선비 아버지의 묘를 쓸 명당자리를 알려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는 얘기다.
서대석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쓴 '구비문학'에도 가난한 선비의 선행에 은혜를 갚은 구렁이 이야기가 나온다. 충남 공주군에서 전해 오는 설화다. 가난한 선비가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가다 외진 산골에 여자 혼자 사는 민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 여인은 선비를 극진히 모셔 결국 반년간이나 함께 살게 된다. 이후 선비는 가족 생각이 나 고향에 내려갔는데 산골 여인이 선비 가족에게 금은보화를 보내 부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러 여인의 집을 다시 찾아 가는 길에 선비는 백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여인의 정체가 구렁이며 자네와 식구들을 몽땅 잡아먹고 용이 되려 한다"며 "밥을 먹는 척하다 여인 얼굴에 밥을 뱉으면 구렁이가 되어 죽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고민을 거듭하다 여인을 찾은 선비는 노인이 해준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런데 구렁이 여인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백발노인의 정체가 실은 오래 된 돼지이며 자신과 승천을 두고 다투는 중이라는 것이다. 여인은 또 "만약 내 얼굴에 밥을 뱉었다면 나는 용이 되지 못하고 당신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마침내 용이 되어 승천한다. 선비는 구렁이 여인이 남겨준 금은보화 덕분에 대대손손 잘 살게 된다는 얘기다.
사랑에 빠진 뱀에 대한 설화도 있다. 일반적으로 설화 속에서는 뱀이 인간으로 변신하거나 환생하는데 비해 '조월천과 상사뱀' 이야기에서는 인간이 뱀으로 환생한다. 상사병 걸린 뱀이라 하여 '상사뱀' 설화라고 불린다. 내용은 이렇다. 오성대감 집에 글을 배우러 다니던 양반가문의 자제인 조월천에게 이방의 딸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조월천은 그녀가 정성껏 쓴 러브레터를 찢어 우물에 던져 버린다.
깊은 그리움이 마침내 병이된 딸이 죽음을 앞두자 그녀의 아버지 이방은 오성대감에게 딸이 조월천을 한번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오성대감의 부탁으로 조월천은 이방의 집을 찾는다. 하지만 내외를 한 조월천은 명주 수건을 감은 손으로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이에 딸은 "양반이라 내 살에 손대는 것도 싫어 저러나보다"며 서운한 마음에 그만 상사뱀이 되고 만다.
설화 속 뱀은 가정의 재산을 지키고 재물을 가져다 주는 행운의 신으로도 종종 등장한다다. 집안의 고방(광)에 머물며 재물을 지켜주는 구렁이가 있는데 이를 '집지킴이' 또는 '업'이라 불렀다.
전라남도 진도에선 구렁이 '업'에 얽힌 설화가 전해온다. 한 어부가 집안에 들어온 구렁이를 죽였는데 나중에 자신이 죽인 것과 똑같은 색깔, 크기의 구렁이들이 그물에 잡혀 올라와 기겁한다는 이야기다. 그 뒤로 어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구렁이를 함부로 죽이지 않게 됐다.
뱀이 허물을 벗는다는 점이 구전설화에 반영되기도 한다. 하반신이 뱀으로 태어났지만 착한 신부를 만나 허물을 벗고 사람이 된다는 '뱀서방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이 이야기는 추풍령 고개에 있는 관리(官里)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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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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