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다 고이치 전 예일대 교수 "시라카와 업적은 C학점"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정치권의 장난인가? 실제 가능한 목표인가?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몇 달이면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의 대학 은사의 입에서 나와 이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저성장 저물가가 특징인 디플레이션을 이길 수 있다는 발언은 반가운 소식일지 몰라도 그가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주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의 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의 정책방향이기도 하지만 아베의 생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물가 목표 2~3% 상향조정,공격적인 양적안화,중앙은행의 건설공채 매입을 총선 공약으로 내건 정치인이다. 시라카와 BOJ 총재의 임기는 4월8일이고 야마구치 히로히데와 니시무라 교히코 부총재의 임기는 3월이어서 아베의 말을 따를 공격적인 인물을 BOJ총재와 부총재로 앉힌다면 물가목표를 맞추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게다가 9명의 BOJ정책위원회 민간위원 2명이 양적완화를 지지한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을 몇 달안에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인물은 1972년 도쿄대학에서 시라카와 총재를 가르친 하마다 고이치 전 예일대 교수(76)다.그는 2001년 물가기대심리를 바꾸기 위해 BOJ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1%로 잡을 것을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마다 전 교수는 지난 4일 블룸버그통신 전화인터뷰에서 “차기 BOJ 총재는 현 총재의 ‘나약한’ 노력을 뛰어넘으로써 수십년의 디플레이션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BOJ는 인플레이션이 2%나 3%에 이를 때까지 통화완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마다는 아베가 이달 총선에서 승리해서 좀 더 공격적인 중앙은행 총재를 임명한다면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가 지난달 무제한 양적완화를 촉구한 것을 비롯해 일본 정치인들은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완화 조치를 더 하도록 BOJ에 압력을 가해왔다.일본 정치권은 시리카와가 디플레이션을 반전시키고 침체직전인 경제를 부양하는데 실패했다는 비판해왔다.
하마다 교수는 “시라카와의 업적에 A~C점수를 매긴다면 C학점을 받을 것”이라면서“그는 원칙을 고수하고 탄력적인 정치적 판단력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다는 “BOJ 총재로서 시라카와의 단기 국채매입 정책은 매우 매우 약하다”고 비판하고 “BOJ가 외국채권과 만기가 더 긴 채권을 매입하고 부동산 투자신탁과 상장지수펀드(ETF)매입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염려는 현재 0.1%인 기준금리를 올리면 완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BOJ나 노다 요시히코 정부의 반응은 한마디로 불쾌함 그대로이다. BOJ 대변인은 하마다의 개인 언급에 대한 논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라카와는 지난 달 기자회견에서 3% 인플레이션목표는 현실성이 없으며 무제한 통화발행은 국가부채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또 노다 요히시코 현 총리 역시2~3% 물가목표가 현실성이 없다면서 중앙은행이 억지로 공개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서는 안된다며 역시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이미 200%를 훨씬 넘었다.일본 재무부가 발행한 채권을 중앙은행이 사준다면 국가부채는 급증할 게 불을 보듯 뻔하고 자칫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과 이에 따른 대규모 자본 유출도 뒤따를 수 있다.
BOJ는 지난 1월 1% 물가목표를 제시하고 표적이 가시화할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10월30일 정책회의에서 자산매입기금을 11조엔(미화 1340억 달러) 증액시켰으나 일본 정치권은 영 마땅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9명의 위원 가운데 사토 다케히로와 기유치 다카히데 등 2명의 위원은 더 확장적인 정책을 지지한 것으로 의사록에서 밝혀졌다.
아베가 BOJ를 손보겠다고 벼르고는 있지만 BOJ총재를 자기맘에 드는 사람으로 맘대로 앉힐 수는 없다.일본의 상원인 참의원의 의석은 과반미만이어서 지명자 인준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시라카와가 낙점되기 전 자민당이 추천한 2명의 인물이 거부당한 적이 있다.
게다가 총리가 돼 일본 경제 전체를 감안해야 하는 아베는 말을 바꾸고 양적완화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야당일 때는 BOJ에 온갖 압력을 넣다가도 집권여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관측이다.정치권이 무책임하다고 비판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일 '회색인의 짐'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정치권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정하는 것은 정치인의 일이며 따라서 아베가 BOJ에 높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고 운을 뗐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이나 명목 GDP를 목표로 해야하는 지는 정치인들이 결정하는 일이지 중앙은행 혼자서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정치인들은 중앙은행에 자산거품,과잉차입,리스크집중을 피하는 관점에서 정의된 구체적인 지침을 줘야 하고 중앙은행의 은행가들이 자신들의 수단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아베가 특정 종류의 채권을 사도록 BOJ에 권고하는 것은 잘못이며,중앙은행도 좀 더 개방해 투자자와 정치인과 유권자들에게 자기들의 행위를 뒷받침할 논리와 목표들간의 상반관계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중요성이 더 하면 할수록 정치인들은 중앙은행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일본 정치권은 뭐라고 할까? 디플레이션 맛을 보라고 할까? 아니면 고개를 “괜찮은 제안”이라고 할까?
박희준 기자 jacklond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