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뭘 해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김철호)
"축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한해였다."(박진포)
성남 일화의 부진은 2012 K리그 최대 이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프로축구 최다 우승(7회) 팀이란 타이틀이 무색했다. 시즌 초반 '신공(신나게 공격)'이란 타이틀과 함께 '트레블(3관왕)' 달성을 공언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2년 만에 패권을 노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는 '복병' 부뇨드코르(우즈베키스탄)에 덜미를 잡혀 16강에서 일찌감치 도전을 멈췄다. 지난해 타이틀을 거머쥔 FA컵 역시 16강에서 울산에 1-2로 역전패했다. 마지막 남은 K리그마저 상위 스플릿(1~8위) 진입에 실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후 성남은 졸전을 거듭한 끝에 12위(승점 52)로 한해를 마감했다. 시즌 막바지에는 홈팬들의 비난까지 겹치면서 선수단의 사기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유난히 혹독했던 2012시즌. 한해를 마무리하며 자타공인 '성남맨'을 자부하는 두 선수와 마주앉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 9월 팀에 합류한 김철호와 데뷔 2년 만에 핵심 수비수로 성장한 부 주장 박진포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두 선수 모두 팀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다음은 김철호-박진포와의 일문일답
아시아경제 (이하 아경) 김철호는 제대 후 2년 만에 친정팀에 돌아왔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철호(이하 김) 아직 팀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 나 역시 적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시즌 성적이 워낙 좋지 못했다. 특별한 소감을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아경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
김 2년 사이 선수들이 거의 바뀌었다. 다른 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솔직히 조금 어색하다. 예전 알고 지내던 선수들이 다 떠나고 몇 명 남지 않았다. 홍철, 김성환 정도가 그나마 낯익은 멤버들이다.
아경 고참으로서 바라본 성남 부진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김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 계속 패하다보니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예전과 달리 우리 팀 특유의 진득한 맛은 사라진 것 같다. 솔직히 뭘 해도 안 되는 느낌이랄까. 다 같이 모여 얘기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경 박진포의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박진포(이하 박) 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는데 자꾸 지다보니 습관이 된 것 같다. 의욕과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안 좋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선수들이 이길 의지가 없다는 팬들의 비난도 거세졌다. 너무 힘든 한해였다.
아경 성적이 내리막을 걷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 전반기를 마치고 사샤와 에벨찡요가 떠나면서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했다. 자엘, 레이나 등 새로운 용병들이 합류하고 팀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기존 멤버와 원만하게 조화를 이뤘어야 하는데 계속 엇박자를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많이 흔들렸던 것 같다.
아경 올해는 유독 용병 덕을 못 본 것 같은데
김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 선수들과 관계도 서먹했다. 나 같은 경우 뒤늦게 팀에 합류했지만 객관적으로 용병들끼리만 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박 미안한 얘기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올 한해 용병들 활약은 실망스러웠다. 결정적 찬스에서 한 방을 결정지을 해결사가 없었다.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더 힘들었다. 용병들이 전방에서 공을 잡아도 뭔가 해 줄 거라는 기대감이 없어졌다.
아경 막바지에는 홈팬들과의 갈등도 심했다. 경기장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서포터스도 있었는데
김 솔직히 성남 입단 이후 처음 겪은 일이었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팬들 입장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선수들도 같은 심정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감수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경 선수들이 이기려는 의지가 없다는 비판도 상당했다
박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가슴 아팠다. 누구보다 이기고 싶은 것이 선수들 마음이다. 생각한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버린 탓이 크다.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모두들 많이 힘들어했다.
아경 팬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었나
김 성적 부진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경기 중에 선수들에게 욕을 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특히 어느 선수를 교체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팬으로서 도가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박 사생활을 거론하면서 욕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경기 끝나고 지친 상태에서 라커룸에 돌아올 때 욕을 들으면 속상하다. 자신감도 계속 떨어지고.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원정에서 경기하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아경 김철호의 경우는 성남에 몸담으면서 굵직한 영광을 많이 경험했다. 우승컵도 여러번 들어올렸다. 팬들의 이런 비난이 남다를 것 같은데
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있을 때와는 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어린 선수들도 늘어났고. 함께 어울리기는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경 예전에는 팀이 흔들리면 선배들이 중심을 잡아주곤 했나
김 내가 막내일 때만 해도 경기장에서 욕을 엄청 먹었다. 전반전 시작부터 게임 끝날 때까지 그랬다. 정말 경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였다. 상처도 많이 받고 한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있다.
아경 고참으로서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김 물론 흔들리는 분위기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옛날 얘기를 꺼내 후배들을 나무라는 것도 성격상 맞지 않았다.
아경 우여곡절 끝에 한해를 마쳤다. 소감이 어떤가
박 아쉽고 후련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솔직히 축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한 해였다. 최근 몇 년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올해 부진한 모습이 더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경 김철호의 경우는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있다. 레전드로 남길 바라는 팬들의 요청도 있는데
김 아직 계약과 관련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물론 한 팀에서 레전드로 남고 싶은 욕심은 있다. 협상을 통해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다.
아경 2013시즌 성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경험을 돌이켜보면 멤버가 화려하다고 꼭 성적을 내는 건 아니었다. 내년에는 분명 지금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동계훈련을 착실히 해서 반드시 우승하도록 노력하겠다. 물론 진포가 팀을 잘 이끌어줘야 한다.(웃음)
박 내년에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새로 오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큰 변화는 없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너무 많은 선수들이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동료들 사이에 끈끈함이 사라진 느낌이다. 아무래도 1년보다는 2년 동안 함께한 선수들이 발도 잘 맞고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겠나. 너무 많은 변화는 없었으면 좋겠다.
김흥순 기자 sport@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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