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인상이 참 좋았다. 으레 영화감독하면 날카로운 눈빛과 말 한마디 없이도 느껴지는 포스같은 것들을 떠올릴 법 했지만, 영화 '철가방 우수씨'를 연출한 윤학렬 감독은 여느 옆집 아저씨와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하는 인상이었다. 그런 그의 인상 덕분인지 영화 역시 따뜻함이 물씬 느껴졌다.
'철가방 우수씨'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故 김우수 씨의 생을 다룬 작품이다. '철가방 천사'라 불리며 많은 선행을 한 김우수 씨의 사연은 MBC 드라마 '골든타임'을 통해 회자되며 다시 한 번 대중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연히 뉴스를 통해 김우수 씨의 사연을 접하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는 윤학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처음 영화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처음 김우수 씨의 사연을 뉴스로 접하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한 시민이 이렇게 알려질 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본인도 몰랐으니까. 스스로 좋아서 한 일인데, 그게 사람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1,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문을 왔다. 모객을 한 것도 아니었다. 뉴스를 접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 유명인들의 재능 기부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처음 영화를 제작한다는 의견을 전했을 때 최수종 씨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여기에 부활의 김태원 씨 역시 OST를 만들어주셨다. 의상을 협찬해 주신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은 극중 배마담 역을 맡은 배우 장혜숙 씨의 소개로 알게 됐다. 이외수 선생님이 영화 주제곡의 작사까지 맡아주셨다. 여기에 대형 배급사까지 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것은 국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 내 인맥이 아니다. 아는 사람을 통하고 통해서 연결된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 실화를 담았지만, 그래도 영화다. 극적인 요소는 얼마나 담겨있나?
=실제 김우수 씨가 대통령 조찬에 초청됐을 때 평소 배달하던 복장 그대로 간 일. 매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는 장면 등은 모두 사실이다. 실제 내가 김우수 씨의 고시원 방을 찾아갔을 때 드링크 음료 박스 안에는 영화 티켓이 꽉 차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조조로 영화를 보셨다고 한다. 또 방 한구석에는 경제지가 쌓여있었다. 주식을 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려 하신 거다. 영화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가급적 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열흘 정도 걸렸다. 사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많은 유혹을 받았다. 내가 전문 작가로 21년을 지냈는데, 좀 더 잔인한 극성을 투입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돈을 못 갚는 여자들에게 파렴치한 짓도 하고, 자기 돈 떼어 먹은 놈 죽이려고도 하는 그런 장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리면 이 분의 삶을 기록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손해를 보더라도 최대한 사실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물론, 완전히 사실만 그린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나, 고시원 내 러브라인 등은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초중고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아이들이 보면서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한다. 그건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도 긍정적이다. 또 청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게 진정한 나눔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돈을 많이 나눈다고 나눔이 아니다. 행동을 통해 움직여야 한다. 행동이 가져다주는 큰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 윤 감독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나눔이란?
=나눔에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나를 과시하거나 나를 드러내거나 상대에게 모욕을 주면 나눔이 안 된다. 이런 게 있다. 만약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밴드 공연을 한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곳에서 콘서트를 하고 그냥 돌아온다면 나눔이 아니다. 그 악기를 모두 놓고 그 사람들이 연주를 직접 배우고 또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 바람이 있다면?
=정말 최수종 씨의 바람처럼 100만 관객이 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중에 작은 관이라도 대여해 장기 상영을 할 수 있다. 또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최수종 씨가 자장면을 배달할 때 장군복으로 재미를 주자고 하기도 했다. 오지헌은 빨간 내복을 입는 거다. 축하 퍼포먼스를 그렇게 계획했다. 여태 시작조차 기적이었으니, 그런 날이 오지 못하리란 법이 없지 않을까.
장영준 기자 sta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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