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죽기 살기로 뛰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홍명보 전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이 2012 런던올림픽 영국과의 8강전 당시 지동원(선덜랜드)을 선발로 내세운 배경을 공개했다.
홍 감독은 26일 파주NFC에서 열린 P급 및 A급 지도자 강습회에 특별 강사로 참석,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획득까지의 준비과정과 지도자로서 철학을 밝혔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축구 종주국 영국과의 8강전에서 지동원을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시킨 비하인드 스토리. 당시 지동원은 무뎌진 경기 감각과 자신감 결여로 대표팀에서 좀처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진의 원인은 소속팀 내 불안한 입지와 무관하지 않았다. 지동원은 올림픽에 앞서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9경기에 출전했지만 이 가운데 17번은 교체로 나설 만큼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숱한 마음고생은 올림픽대표팀 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별예선 3경기 모두 후반 교체 출전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 없이 물러났다.
단판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8강 토너먼트. 홍 감독은 영국과의 절체절명 승부를 앞두고 선발 명단에 지동원의 이름을 올렸다. 남다른 예감이 더해진 판단이었다. 그는 "영국전 당시 전술의 핵심은 지동원의 선발 출전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의 포지션 변경이었다"며 "당시 지동원은 경기력이 좋지 않았지만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선발 투입시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과감한 결단에는 선수시절 경험이 큰 몫을 차지했다. 홍 감독은 1997년 벨마레 히라쓰카(현 쇼난 벨마레) 유니폼을 입고 일본 J리그에 진출한 뒤 겪었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그는 "일본으로 이적하고 후반기 경기를 뛰는데 선수들이 패스를 내주지 않았다. 90분 동안 체력만 소진하고 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당시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6개월 뒤 한국에서 한·일전이 열렸다. 설움이 남아 있어 그런지 경기 내내 100% 기량을 쏟아 부었다"며 "그 때만큼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임했던 기억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남다른 경험은 결정적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쳤다. 홍 감독은 8강전을 앞두고 지동원과 별도 미팅을 통해 영국 생활에서 겪은 고충에 대해 전해 들었다. 이후 선발 투입 계획을 전하며 "네가 교체 사인을 보내기 전에는 절대 바꾸지 않겠다"는 격려로 힘을 불어넣었다.
홍 감독의 믿음은 이내 결실로 이어졌다. 지동원은 영국전에서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4강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설움을 날린 통쾌한 한 방이었다.
홍 감독은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는데 운 좋게 득점까지 해서 이길 수 있었다. 지동원 역시 한·일전에서 내가 느꼈던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을 것"이라고 회상하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흥순 기자 sport@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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