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길막힌 '출근길 1시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김효진 기자] '택시 대중교통 법안'에 반발해 22일 밤 12시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버스 운행 중단이 일단락됐다. 무기한 파업을 예고한 버스업계가 1시간 운행 중단 후 오전 7시 20분부터 전면 재개하면서 본격적인 출근시간 교통 대란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운행재개 소식을 미처 접하지 못한 일부 시민들이 택시승강장으로 몰려 택시가 오지 않아 30분 이상 발을 동동 구르거나, 파업소식으로 월차를 낸 직장인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다행히 '출근대란'은 피했지만 이번 사태는 '부실 정치 대란'을 보여줬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을 충분한 검토와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 개정을 밀어붙여 큰 혼란을 줬다는 지적이다.
◆택시승강장 대기줄 '진풍경', 30분 이상 기다려= 출근시간대 버스 운행은 원활해졌지만 일부 직장인들은 미리 월차를 쓰거나, 아침 일찍 택시 승강장으로 시민들이 몰리면서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기도 일부 지역 승강장은 오전 6시가 채 안 돼 택시를 타려는 '대기줄'이 10여m까지 이어졌지만 택시가 오지 않아 30분 이상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과거 사라진 합승이 눈에 띠기도 했다. 일부 택시들은 경기도가 이날 오전 6시부터 무료 운행토록 했으나, 이를 어기고 택시비를 받아 혼란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근하는 조 모(남ㆍ30)씨는 "버스파업 철회소식을 미처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자가용을 많이 끌고 나와서인지 평소보다 도로가 많이 막힌다"며 "1시간 30분가량 걸리던 출근길이 2시간으로 늘어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출퇴근 하는 김소진(여ㆍ34)씨는 "분당에서 같이 출퇴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늘 월차 낸 사람도 많다"면서 "혹시 몰라 지하철을 탔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1.5배는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택시, 대중교통 인정만이 해법인가?= 이번 '택시 대중교통 법안'은 국회의원들이 택시가 노선버스와 마찬가지로 대중의 이동수단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해 상정된 것이다. 이같은 개정안은 17대, 18대 국회에서도 3건, 6건씩 제안된 바 있지만 임기만료 폐기되다가 19대 들어서는 비슷한 내용으로 5차례 제안돼 이번에 법사위가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며 일단 총리주재 긴급 장관회의를 열어 본회의 상정보류를 여야에 요청키로 했다.
국회의원들이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보는 시각은 저렴한 기본료와 전국에 25만대로 늘어난 택시 대수에서 비롯됐다. 이는 또 법안택시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게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의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택시 기사들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측은 "택시종사자들의 열악한 여건을 고려해 버스처럼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의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 모씨는 "감차와 불법도급제 근절 등이 근본적이 해결책인데, 이번 법안이 얼마나 종사자들에게 혜택을 줄지 의문이며 사업자만 배부른 제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치권 뒤늦게 허둥지둥= 법안 개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치권은 버스 파업이 현실화되자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22일 버스파업 사태를 빚은 '택시 대중교통 법안' 문제와 관련해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숙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여야는 각자 법안 통과 방침에 대해 재검토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치밀한 검토 없이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의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어 향후 이 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진희 기자 valere@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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