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球聖)' 존스의 마스터스와 니클라우스의 메모리얼, 아놀드파머까지
[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과 바이런넬슨챔피언십, 최경주인비테이셔널, 로레나오초아인비테이셔널.
대회 명에 모두 선수들의 이름이 들어간 대회다.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적어도 자국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선수들이다. 대회 위상을 감안해 일부러 이름을 넣지 않은 대회도 있다. '구성(球聖)' 보비 존스의 마스터스와 잭 니클라우스의 역작 메모리얼토너먼트다. 벤 호건의 크라운플라자인비테이셔널과 타이거 우즈가 호스트로 나서는 AT&T내셔널도 같은 맥락이다. 선수들이 만든 '빅 매치 열전'이다.
최고의 무대는 '꿈의 메이저' 마스터스다. 평생 아마추어골퍼로 활동하며 골프의 성인이라는 의미에서 '구성(球聖)'이라는 애칭까지 얻은 존스는 1930년 미국 조지아주에 인디언들의 농장이자 과수원 종묘장 147만7천082㎡를 7만 달러에 사들여 앨리스터 매킨지와 함께 오거스타내셔널을 조성했다. 1934년 대회가 시작됐고, 1939년부터 마스터스란 이름이 붙여졌다.
메모리얼토너먼트와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의 권위도 만만치 않다. 두 대회는 특히 니클라우스와 아놀드 파머의 라이벌 의식과 맞물려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존스를 유난히 존경했던 니클라우스가 먼저였다. 1966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자 "또 하나의 마스터스를 만들고 싶다"며 고향인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인근에 뮤어필드빌리지코스를 완성했다.
바로 메모리얼토너먼트(The Memorial Tournament)다. 대회 명에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은 물론 마스터스(The Masters Tournament)와 단어 구성까지 비슷하다. 처음에는 메모리얼데이(5월 마지막 주 월요일)가 있는 주말에 열리다가 지금은 악천후를 피해 6월 초로 변경됐다. 매년 위대한 골퍼의 헌정 행사를 열고 있고, 첫 주인공은 예상대로 존스였다.
니클라우스는 이 대회를 '제5의 메이저'로 격상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파머와 PGA투어 커미셔너 딘 비먼이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파머는 언제나 시비의 대상으로 존재했고, 비먼은 코스디자인 회사를 운영할 때부터 적수였다. 니클라우스는 비먼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제5의 메이저'로 밀어붙이자 "메이저의 명예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비난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기지는 못했다.
니클라우스에 대한 경쟁심에 붙탄 파머는 메모리얼토너먼트 창설 3년 뒤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을 신설했다. 니클라우스는 이 대회가 처음부터 타이틀스폰서를 붙여 상업적인 냄새를 풀풀 풍겼다는 점에서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파머의 존재감이 우즈 등 빅스타들이 출전을 유도했다. 또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도도 컸다. 수익금을 아놀드파머 메디컬센터와 위니 파머(파머의 작고한 부인) 산모영아병원에 기부했다.
바이런넬슨챔피언십의 전통도 이에 못지않다. 넬슨은 예전에 90대의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18번 홀 옆 텐트에서 늘 경기를 지켜보면서 직접 우승자를 격려했다. 자선기금을 가장 많이 모으는 무대로도 유명하다. 넬슨은 "(나에게는 이 대회가) 마스터스나 US오픈 우승, 또는 11연승 기록보다 더 중요하다"며 "사람들을 돕고 있기 때문"이라고 애착을 가졌다.
골프는 존스와 니클라우스, 파머 같은 '골프 전설'을 동력으로 선수들이 직접 대회를 만드는 전통을 세웠다. 앞으로도 우즈와 매킬로이 등이 명맥을 이어 나갈 것이다. 이때문에 국내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한 최경주가 대회를 열고 싶어했던 것도 당연하다. CJ에서 타이틀스폰서를 맡아 최경주란 이름을 대신해 아예 CJ인비테이셔널이 되면서 의미가 퇴색된 게 그래서 더욱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