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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원 빌리려다 수백만원 물어줄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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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깡’ 이통사 등쳐 140억 가로챈 일당 적발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수십만원을 빌리려던 소액대출 희망자들이 졸지에 수백만원을 물어주게 됐다. 이동통신회사들의 과도한 경쟁을 악용한 사기꾼 일당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김석재 부장검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6명을 구속기소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16명을 입건·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 4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무선인터넷서비스 가입을 가장해 이동통신회사들로부터 143억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이른바 ‘와이브로깡’에 이용당한 위장 가입자만 1만여명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무선인터넷서비스 가입자 유치를 위해 이통사들이 내놓은 결합상품을 악용했다. 이통사들은 ‘와이브로’서비스 장기 가입자에게 노트북을 무이자 할부판매하는 상품을 내놓고 위탁 대리점이 가입서와 노트북 일련번호(시리얼 넘버)만 입력하면 한달 안에 노트북 대금과 개통보조금을 내줬다.

사기꾼 일당은 그러나 노트북을 실제 가입명의자에게 지급하는 대신 이를 중고 유통업자에게 싸게 팔아넘긴 뒤 그 돈을 쪼개 나눠가졌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노트북 시리얼만 입력해 돈만 받아낸 경우도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하부 모집업자, 중간업자, 대리점 업주로 조직적으로 범죄에 나섰다. 하부 모집책들은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소액대출해준다”고 인터넷에 광고를 내 대출 희망자들을 끌어 모았다. 모여든 대출희망자들은 대부분 금융권의 정상 대출이 어려워 몇십만원을 빌리려던 사람들로 그 중엔 학생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집책이 대출희망자, 사실상 명의제공자에 불과한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 중간업자는 이들을 와이브로 서비스에 가입시키고, 대리점업주는 노트북을 팔아치운 돈 등으로 돈을 나눠준 뒤 이통사로부터 노트북 판매대금과 개통보조금을 전액 정산받는 식이다. 개통 대리점 업주들은 전자기기 거래가 활발한 용산일대에 주로 자리잡아 노트북 처분도 용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개 100~200만원의 돈이 마련되면 그중 20~40%만 명의를 제공한 가입자에게 대출금 명목으로 내주고, 대리점업주 15~25%, 중간업자 5~10%, 하부모집책 15~20%로 나눠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무선인터넷 서비스 사용량이 전혀 없는 점을 의심하는 이통사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을 동원해 사용량을 꾸며내기도 했지만, 결국 107억원 가까이 손해를 본 KT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덜미가 잡혔다.


이들 일당에게 명의를 내어 준 소액대출 희망자들도 사실상 피해자다. 대출희망자들은 대개 20~30만원 소액을 대출받으려고 명의를 내줬지만 수십~수백억원대 손실을 본 이통사들이 미사용에 따른 강제해약 위약금, 노트북 할부대금 명목으로 많게는 240만원까지 채권을 추심하고 나선 탓이다. 애초에 정상 대출이 힘들었던 이들은 이 사건으로 신용등급이 더 떨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제대로 된 대출약정 같은 게 없었음에도 사정이 궁박해서 가입자들이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것 같다”며 “가입자들은 과금없이 명의만 내주는 거라고 설명을 들은 터라 와이브로 서비스나 노트북 이용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와이브로 외에도 이통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불법 대부업과 연결된 서비스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폰깡’으로 “가입보조금 나오니까 따로 돈 나갈 일 없다”며 가입자를 모집한 뒤 가입전화를 대포폰으로 팔아넘겨 돈으로 바꾸어 나누는 식이다.


앞서 9억원대 ‘와이브로깡’ 혐의로 지난 8월 구속기소된 임모(32)씨도 직전까지 ‘휴대폰깡’을 하던 불법대부업자다. 1심 재판부는 “유사 범죄로 처벌받은 전과 등을 고려해 실형이 불가피하다”며 최근 임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임씨의 형량을 정하며 “이통사의 과도한 판촉과 과당경쟁이 일부 원인이었다”던 점도 참작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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