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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앓고 있는 중병의 본질=디플레+엔고+위상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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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일전에 만났던 한 재무관료는 일본 경제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과거 달러당 200엔을 넘었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 70달러 후반인데도일본은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일본 기업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엔화 가치 절상에 대응한 결과다.그래서 무섭다”라고.


맞는 말이어서 고개를 끄득였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터진지 20년이 지났고 그 기간동안 저성장에 저물가 즉 디플레이션으로 경제규모가 쪼그라들었다고 하는데 경제는 돌아가고 기업들은 무역수지를 내고 있어 그 비법이 부럽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특히 수 백 년 된 역사에다 특출한 소재.가공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적지 않아 일본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이 간다는 말이 있듯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1910년대 말부터 ‘선진국’ 대접을 받았고 엔화는 투자의 대상이 됐으며 콧대높은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일본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안달이 났을 만큼 경제력이 막강했던 일본은 그동안 축적한 돈으로 버틴 게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와 마켓워치는 최근들어 ‘일본은 끝났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0%가 넘는 16조 달러 이상의 빚을 진 미국 언론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귀담아 들을 구석이 적지 않다.



WP는 지난달 29일 일본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국가부채를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 해 말 현재 229%로 세계 1위다.


이는 살림이 거덜나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IMF 등 트로이카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의 163%보다 높다.


경제학자인 피터 분과 시몬 존슨은 최근 저서에서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정부 역시 파산상태에 빠질 수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엔화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금리가 오르고 은행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생기며 보험과 연금제도에 타격을 입는 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은 1980년부터 10년동안 GDP를 무려 세배나 불리며 글로벌 경제를 이끈 거함이었는데 최근의 경기후퇴는 이러한 ‘일본의 기적’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다.


마켓워치는 일본이 안고 있는 부채와 경제의 본질을 좀 더 깊이 파고들었다.마켓워치는 1일 ‘일본은 디플레이션 함정보다 더 한 데 빠져있다’는 제목의 도발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엔화 강세,20여년의 디플레이션에 두들겨 맞은 일본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중국 등으로 이전하고 있으며 산업의 핵심은 잠식당하고 산업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마켓워치는 꼬집었다.


이어 일본은 오래전부터 경제모델이 되기를 중단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즉 일본이 앓고 있는 중병은 디플레이션에 이은 엔화강세, 그리고 경제위상 추락 등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통화량이 줄어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하는 현상이다. 성장률 하락과 낮은 물가가 특징이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일본의 성장률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1953~1973년까지는 2차 대전후 재건활동 등의 영향으로 연평균 9%를 기록했으나 1974년~1990년에는 4.2%로 성장률이 반토막 났고 이어 1991년부터 현재까지는 10분의 1 수준인 연평균 0.5% 수준으로 성장률이 하락했다.


마켓워치는 일본 경제의 정점을 1989년으로 규정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주가지수가 3만9000까지 올랐다. 이후 주가는 추락해 현재는 절반 수준인 9000에 머물고 있다.



마켓워치는 세계 일류의 기업,고등교육을 받은 노동력, 효율과 규율에 대한 명성을 가진 이나라가 어떻게 하다 이지경에 처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디플레이션 함정’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디플레이션 함정은 돈을 아무리 풀고 이자율을 낮춰도 디플레이션이 악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리를 내리거나 이자율을 낮추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도 개인은 장래에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고 돈을 쓰지 않고 현금으로 뷰유하고 기업은 투자를 보류하는 ‘유동성 함정’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대차대조표 불황’이리라.자산가치가 급락해 부채상환부담이 커져 부채를 줄이는데 돈을 최우선으로 쓰면서 저금리에 유동성을 아무리 공급해도 가계와 기업은 부채축소에 돈을 쓰는 탓에 투자와 소비로 흐르지 않아 불황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자산거품은 20여년 전에 터졌다.물가하락은 대규모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디플레이션이 생겼다. 일본 정책 당국자들은 가다 서는 식의 통화와 재정 부양책을 썼다. 필요한 돈은 국채 즉 나라빚을 내서 조달했다.그래서 국가부채가 세계 최대라는 오명도 둘러썼다.


그런데도 정책의 약발은 거의 없었다.소비자물가는 지난 10년 중 7년간 하락했으니 말이다.


세상사 화불단행 즉 온갖 화는 한꺼번에 오는 법이다. 엔달러 환율이 일본을 급습했다. 19985년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평가절상을 위한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는 줄기차게 상승했다.합의직전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는 1985년 말 200엔, 1988년 120엔대로 오르는 등 3년 사이에 가치가 100% 상승했다. 이후에도 엔화가치는 계속 올라 지금은 달러당 79엔대에 머물고 있다. 거의 160% 정도 올랐다.


워싱턴의 국제금융연구소(IIW)의 필립 서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화는 50%정도 과대평가됐다.달러당 130엔대에서 거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표시 제품 가격이 두배 반 이상 오르는데도 팔리기를 기대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최근 몇 달사이 적자를 냈지만 그동안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왔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여 외환보유고를 세계 2위(9월 말 현재 1조2770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중 미국 국채가 1조1210억 달러나 된다.


일본이 디플레 함정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프린스턴대 교수시절인 1999년 일본에 통화의 수문을 열라고 조언했다.


다시말해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탈출하라는 것이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그는 당시 “일본의 통화정책은 마비된 것 같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일본 통화당국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보장된 것이 아니라면 실험하지 않고 시도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일본 관료들은 “우리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등 할 짓은 다 했지만 결과가 미약하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노무라 연구소의 리처드 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 있어 기업이든 가계든 돈을 빌리지 않으려고하는 만큼 저금리는 경기부양을 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대신 그는 대규모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을 옹호한다. 정부 지출이 총수요 감소를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게 그의 처방인데 국가부채가 이미 GDP를 넘었다는 게 걸림돌이다.


시라카라와 마사아키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BOJ) 총재는 "중앙은행만으로는 힘들고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런 사이에 일본의 국제위상은 추락했다.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그리고 아무도 일본을 본받아야 할 경제모델로 삼지 않고 있다고 마켓워치는 꼬집었다.


마켓워치는 인구 고령화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민에 저항하는 일본은 경제지도력과 자신감마저 상실했다고 결론 내렸다.


재단법인 일본재건 이니셔티브의 후나바시 요이치 이사장은 “일본의 목표는 더 이상 세계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글로벌 경제에서 일본이 경쟁력과 힘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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