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우와~싸다. 잠옷으로 입으면 되겠다.”
21일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 등산로 초입. 주말을 맞아 단풍놀이를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을 사로 잡는 것은 예쁘게 물든 단풍만이 아니었다.
등산로 입구에 죽 늘어선 유명 아웃도어 매장들은 '파격세일' '한정특가' 등 팻말을 내걸고 세일이 한창이었다.
비싸기로 소문난 아웃도어 기능성 티셔츠 한 장을 1만원에 팔자 등산객들은 너도 나도 머리를 들이밀고 어울리는 색깔을 고르느라 바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던' 아웃도어 업체들이 올해는 남아도는 재고 때문에 신상품까지도 '꺾어 팔기'에 나섰다.
밀레 매장에서는 신상품 경량다운 점퍼가 6만9000원. 반값 이하다. 신상 다운재킷은 30%, 고어텍스 재킷은 40% 세일 표시가 붙어있었다. 밀레 관계자는 “이월상품이 아닌 신상품 세일”이라면서 “본사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K2 매장 앞 가판대에는 10만원대 미만의 '반값 등산화'가 수두룩했다. 다운점퍼가 20만원대, 70만원대 고어텍스 재킷도 20만~30만원가량 가격이 뚝 떨어졌다.
매장 직원은 손님들에게 “신상품 재킷은 7만원, 등산화는 5만원 할인 중”이라면서 “배낭은 공짜, 2층에는 할인상품이 가득하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매장 관계자는 “작년에 재고물량이 없었지만 올해는 물건이 많이 남아 이월상품 세일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블랙야크 매장에서도 82만원대 고어텍스 재킷이 57만원, 67만원대 다운점퍼가 33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아웃도어 제품 가격대가 낮아지자 “백화점보다 싸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일부러 북한산을 찾은 주부들도 있었다.
손에 쇼핑백을 여러개 쥔 한 주부는 “절대 비싼 것은 안산다. 세일 상품만 골라서 싼 것만 사고 있다”면서 “평소에도 입고 골프칠 때도 입으려고 여러 장 샀다”고 말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다 반값 이상 할인 중인 다운점퍼를 구매하며 가족들의 겨울을 미리 준비하는 주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웃도어 업체들은 '원 플러스 원' 행사와 더불어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등산화 보상판매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브랜드 등산화라도 상관없다”며 고객을 유인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세일' 정책으로 콧대를 높이던 아웃도어 업체들이 너도 나도 '파격세일' '한정특가' 팻말을 붙이고 나선 것은 작년 겨울과 올 봄 재고가 많이 남은 데다가 불황으로 올 시즌에도 매출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뒤늦게 파격세일에 나서면서 고가논란에 휩싸여 온 아웃도어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아이더 매장 앞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던 한 등산객은 “세일을 한다고 해도 서민들이 입기에는 여전히 너무 비싸다”면서 “저기 이민호(아이더 모델)가 입은 것을 계산해 보면 얼추 200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플 등산복을 입고 하산을 하던 한 부부는 “가격대가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상가에서 할인을 한다기 보다는 가격을 일부러 더 높게 붙여놓고 거기서 할인을 하는 것”이라면서 “고객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고도의 상술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등산을 마친 한 등산객도 “세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올해는 티셔츠 한 장만 샀다”면서 “세일을 해도 가격이 절대 싼 게 아니다. 일시적인 세일보다는 정가 자체가 지금보다 40% 정도는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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