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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은 들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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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일 만의 승리, 무엇이 그를 바꿔놓았나

김병현은 들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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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50일 사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제구, 구속, 위기 대응. 김병현은 더 이상 계륵 혹은 애물단지가 아니었다. 넥센 토종 선발진의 새로운 희망으로 탈바꿈했다.

김병현은 20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 7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사사구 없이 삼진 5개를 잡아내며 50일만의 선발 등판을 승리로 장식했다. 시즌 3승(6패). 김성갑 감독대행의 깜짝 기용에 호투로 화답하며 허덕이던 토종 선발진에 숨을 불어넣었다.


사실 이번 등판은 실험 성격이 짙었다. 선발, 구원을 두루 소화한 김병현에게 맞춤옷을 찾아주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경기 전 김 감독대행은 “(김병현에게) 던지고 싶은 만큼 던지고 내려오라고 했다. 지치지 않는다면 5, 6점 이상을 허용해도 교체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스스로 느끼는 게 있어야 발전도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기회를 부여받은 김병현은 자신감이 넘쳤다. 경기 전 김 감독대행에게 “120개를 던지고 내려오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취재진을 통해 대화 내용을 전달받은 양승호 롯데 감독은 “5회 이전에 120개를 던지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라며 기뻐했다.


무리한 예상은 아니었다. 김병현은 지난 아홉 차례 선발 등판에서 2승 5패로 부진했다. 애를 먹은 주요인은 제구 난조. 6이닝 이상을 책임진 경기는 세 차례에 불과했다. 모든 경기에서 실점(비자책 포함)을 허용했는데, 8월 1일 문학 SK전을 제외하면 매번 3개 이상의 사사구를 남발했다.


김병현은 들꽃이었다


직구 제구도 발목을 잡았지만 더 큰 문제는 구속 저하였다. 김병현은 빠른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섞어 타자를 요리한다. 변화구 위력을 높이려면 빠른 직구 구속은 필수. 그러나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난 탓에 시즌 중반까지 평균 구속은 130km대 후반을 찍는데 머물렀다.


컨디션이 좋아도 그랬다. 시즌 2승째를 거둔 6월 26일 목동 두산전에서 직구(41개) 최고 구속은 143km, 최저 127km였다. 50일 전인 8월 1일 문학 SK전의 내용(27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고와 최저는 각각 142km와 137km였다.


평균 140km 아래의 직구 틈에서 변화구는 조금씩 경쟁력을 잃어갔다. 투구 수가 많아질수록 이는 더했다. 김병현은 탈출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변화구의 비중을 늘렸고 정민태 코치로부터 스플리터도 배웠다. 그러나 강속구 없이 던지는 변화구는 상대에 통타당하기 일쑤였다. 스플리터의 더딘 움직임도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86일 만에 맛본 승리는 바로 이 점을 개선해 창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병현은 이날 36개의 직구를 던졌는데 최고 구속은 147km였다. 1회 전광판에 149km를 찍기도 했다. 더구나 투심패스트볼 등 변종직구를 포함한 직구(42개)의 최저 구속은 135km였다. 뒤늦게 빨라진 구속에 대해 김병현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병현은 들꽃이었다


“투구 간격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올 시즌 많은 휴식을 제공받았는데 그 사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잘못된 방법을 많이 썼다. 팀과 내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시즌 중반까지 선발 출전을 앞두고 김시진 전임감독과 상의를 많이 했다. 김 감독은 ‘올해보다 내년을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등판 간격이 길었는데 그 속에서 내 자신이 안일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팀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했다. 얼마 전까지 선수단 전체에 ‘올해 안 되면 내년에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렸다. 긴장을 너무 늦추고 있었던 것 같다.”


김병현에 대한 특별대우는 선수단 합류 때부터 예견돼왔다. 이장석 대표는 김병현 입단 기자회견에서 “올 시즌은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당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는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년을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역할이 있지만 전적으로 김시진 감독이 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넥센이 올 시즌 김병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건 지난 2~3년 동안 정상적인 선수생활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긴 휴식 끝에 찾은 지난 시즌 둥지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마운드에 오를 기회는 미미했다. 더구나 김병현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올해 33살이다. 이 같은 이유로 시즌 초 김시진 전임감독과 정민태 투수코치는 매일같이 김병현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김병현을 ‘김병현’답게 관리하겠다는 의지였다.


결과적으로 애지중지는 김병현에게 기대만큼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해설위원 A씨는 “넥센이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김병현은 이미 지난 시즌부터 컨디션을 끌어올려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이는 젊지만 메이저리그 394경기를 뛴 베테랑이다. 프로야구보다 훨씬 힘든 일정을 꾸준하게 소화한 그에겐 필요했던 건 적응에 용이한 환경 제공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현도 “온실 속의 화초가 다 좋은 것 같진 않다”라고 말했다.


김병현은 들꽃이었다


지난 여섯 차례 구원 등판으로 온실을 빠져나온 김병현. 그는 들꽃이었다. 이전 직구 구속은 되살아났고 변화구의 제구도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본 팀 동료 강윤구는 “직구의 위력이 정말 빼어났다. 지금까지 본 투구 가운데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현희도 “공이 진짜 좋더라. (같은 유형의 투수로서) 부럽다”라고 말했다. 함께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허도환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정답을 찾은 것 같다. 잘 잡힌 밸런스로 자신만의 공을 던졌다. 마운드에서 평소보다 집중력도 좋았고. 강진(2군)을 다녀온 뒤로 구위가 크게 나아졌다. 이전의 볼도 좋았지만 컨트롤이 잡혔다. 포심, 투심 패스트볼, 서클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모두 좋은 제구를 보였다. 베테랑이라서 내가 사인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볼 배합이 그만큼 기막히단 말이다.”

놀라운 변신의 비결은 하나 더 있다. 포수 허도환과의 잦은 대화다. 둘은 원정경기 숙소에서 룸메이트다. 서로 볼 배합 등을 논의하고 뒤늦게 눈을 붙인다. 허도환은 “원정 숙소에 묵을 때마다 그 지역의 특산 음식을 사주는데 그걸 나눠먹으며 세밀하게 경기를 준비한다. ‘내 볼의 이런 부분은 어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만큼 강한 열정의 소유자다”라고 전했다. 이어 “아직 100%의 컨디션은 아니다. 향상될 여지가 많이 남았다”며 “앞으로 어떤 투구 내용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늘 경기보다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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