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첫 운행 시작한 '책 읽는 택시'에서는 EBS FM '책 읽어주는 라디오' 흘러나와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안녕하세요. 책 읽는 택시입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20일 첫 운행을 시작한 '책 읽는 택시'에 올라타자 택시기사 박준식(58)씨가 반갑게 웃으며 맞았다. 라디오에서는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 '금연 주식회사'가 흘러나왔다.
삼광교통에서 3년 8개월째 택시를 운전 중인 박씨는 20일부터 라디오 주파수를 'EBS FM '책 읽어주는 라디오'에 맞췄다. '책 읽는 택시'를 운행하게 되면서 그동안 듣던 교통방송 대신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박씨는 "처음에 '책 읽는 택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달리는 차 안에서 어떻게 책을 읽나 의아했는데 비밀은 라디오에 있었다"며 "소설을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이젠 나도 책을 많이 접하게 돼 교양이 풍부해질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책 읽는 택시'는 택시 안에서 EBS FM '책읽어주는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택시기사와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도록 하자는 뜻에서 EBS와 숭실대학교, 송파구가 힘을 모아 시작했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통해 택시 기사들은 운전 중에도 독서를 하게 되고, 승객과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며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박씨는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 책은 전혀 읽지 못했다"며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나도 다시 책을 읽게 되나 싶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승객들과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과 책에 대해 대화하려면 기사들의 소양도 필요한데 아직 부족한 것 같아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런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숭실대학교에서는 택시기사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매달 열고 있다. 지금까지 '인문학은 밥이다', '독서는 경쟁력이다'는 주제로 두 번의 강좌가 택시회사에서 열렸다. 매 강의마다 70~100여명의 택시기사들이 참여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앞으로도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미래의 희망은 내가 만든다',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자' 등의 주제로 매달 강좌가 열릴 예정이다.
EBS에서는 택시기사들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기사휴게실을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택시기사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신청 받아서 선물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박씨는 "아무래도 '책읽는 택시'를 운행하게 되니까 나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막막했다"며 "짧은 시간 머물더라도 휴게실이 도서관처럼 바뀌니까 모여 앉아 떠들기보다는 책 읽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박씨는 "요즘 대부분의 승객들은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책 읽는 택시에서는 기사와 승객이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책에 대해서 대화도 나누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과 택시가 그려진 로고가 부착된 '책 읽는 택시'는 현재 약 50여대가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다. 뒷좌석에는 QR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승객들은 택시에서 듣던 방송을 내린 후에도 계속 스마트 폰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김준범 EBS라디오 부장은 "책 읽는 택시가 좋은 평가를 얻게 되면 앞으로 '책 읽는 지하철', '책 읽는 버스'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책 읽는 택시'도 공개 모집해 늘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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