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은 없는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지난 해 10월 킬로그램 당 200원이 넘었던 신문지 폐지 단가가 올해 초 150원 선을 오르내리더니, 이제는 100원 남짓으로 떨어졌다. 쉽게 말해, 일년 사이 반 토막이 난 거다.
신문 한 부의 무게가 100그램이 채 안 된다고 보면, 신문 100부는 모아야 수중에 천원 한 장이 들어오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하루에 최소한 1000부는 모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작은 수레에 10킬로그램이나 되는 신문을 싣고 고물상까지 하루에 10번 이상을 오가야 한다. 폐지를 수거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등이 굽은 노인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모진 노동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눈에 익은 ‘폐지 할머니’가 몇 분 있다. 그 중에 한 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나 볼 법하게 등이 비현실적으로 꼬부라졌다. 그래서 폐지를 줍지 않을 때도, 땅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골똘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할머니의 등은 폐지를 줍다가 그렇게 된 걸까, 폐지를 줍기 위해 그렇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쓸쓸하다.
하루는 자정 무렵 집에 들어가고 있는데,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와 마주친 적도 있다. 그날따라 수레는 폐지를 비롯해 온갖 고물들이 가득해서, 할머니는 서너 걸음을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순간 ‘에이, 내가 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다가갔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할머니는 막대기를 마구 휘두르며 내가 다가오지 못하게 위협했다. “저리 가, 저리 가!” 그것은 두려움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작년 들어 우리나라 1인가구 수는 전체의 24.7%까지 늘어났다. 네 집 중 한 집이 1인가구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뭐 괜찮다. 그런데 이 1인가구 중 절반 이상인 343만명이 65세 이상의 독거노인이라면? 장마철 집구석처럼, 기분이 눅눅해진다.
더 눅눅한 소식도 있다. 국회의원 세비가 소리 소문 없이 기습 인상됐다. 무려 20.3%다. 지난 2월 국회법 통과로 300명으로 늘어난 국회의원들에게 앞으로 1인당 1억3796만원의 세비를 지급해야 한다. 세금에 대한 가장 관용화된 비유가 ‘혈세’인 것을 감안하면, 뱀파이어가 따로 없다. 경기불황에도 아랑곳없는 초특권층, 여의도 뱀파이어들이다. 늦여름에 당도한 진짜 호러다. -컨텐츠 총괄국장 구승준
이코노믹 리뷰 구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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