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사이, 자포자기형 범죄에 대한 공포가 한국 사회를 잠식했다. 신문 사설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해묵은 지적을 쏟아냈고(오늘 신문에 실린 논설이 3년 전 사설과 싱크로율 100%에 육박한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은 온갖 매스컴에 불려 다니며 자포자기형 범죄자의 공통점을 주워섬겼다.
혼자 사는 20~30대 남성, 비정규직 또는 실직, 열등감이 심한 내성적 다혈질 등등. 차라리 인터넷 게시판의 반응이 그나마 참신하다. 서울시내 지역별 성범죄자의 숫자를 조회하는 방법이 등장했으며,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동네별 CCTV 숫자를 직접 세서 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학군 수요’보다 ‘안전 욕구’가 지역별 부동산 값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제까지 학군 때문에 강남에 살았는데, 앞으로는 ‘묻지마 범죄’가 무서워 강남에 살게 될 거라는 뜻이다. 나는 엉뚱하게도, 에미넴의 ‘스탠(Stan)’을 생각했다. 물론 지난주에 있었던 내한공연의 잔상 효과일 것이다. 서사성이 강한 이 노래는 ‘슬림’이라는 가상의 가수를 좋아하는 ‘스탠’이란 팬의 이야기를 짧은 연극처럼 보여준다.
‘나는 당신 노래를 들으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기분 나쁜 날 나는 어딘가 처박혀 당신 노래를 들어요. (…) 때때로 몸에 상처를 내서 피가 얼마나 나오는지 봐요. 마치 아드레날린처럼, 고통이 내게 달려들어요. (…) 아무도 모르죠,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는.’
노래 속 주인공인 스탠은 자신의 우상인 가수 ‘슬림’이 팬레터에 답장하지 않는데 분노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일생일대의 시위를 한다. 임신한 아내를 자동차 트렁크에 가둔 채 다리를 가로질러 돌진해 파국을 맞는다.
비 오는 날 '스탠'을 들으며, 나는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실상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 평균 40~50명으로 자살률이 급증할 때,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들’을 죽이고 싶을 때마다 숫돌에 칼을 갈았노라고 했지만, 실상 그 칼의 끝은 전 재산이 현금 2백원에 4천원짜리 충전카드 뿐인 ‘쪽팔린 제 인생’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죠,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는.’ 법의 눈은 그들을 불쌍한 자살자와 흉포한 범죄자로 구분하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 그들은 동일하다. 모두 죽음을 향해 시속 90마일로 돌진했을 뿐이다.
컨텐츠 총괄국장 구승준
이코노믹 리뷰 구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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