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미운오리새끼'로 취급받던 백색가전이 국내 전자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2'의 가장 큰 화두는 친환경 스마트 백색가전 제품들이었다. 크기는 똑같이 유지하면서 내부 용량과 전력 소모는 크게 줄인 냉장고, 세제를 자동으로 집어 넣는 세탁기, 애완동물의 털을 말끔하게 청소해주는 청소기, 향기나는 의류건조기 등이 전세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IFA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시관은 밀레, 보쉬, 지멘스, 로에베 등의 유럽 가전 업체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빽빽하게 제품을 진열해 놓은 우리나라, 일본 업체들의 전시관과는 달리 넓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애플이 인수를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독일 가전 업체 로에베의 TV 전시 공간은 극히 인상적이었다. TV가 아닌 액자 하나를 벽에 기대어 놓은 것 같은 모습. TV 화면은 아예 켜 놓지도 않았다. 마치 "우리 TV를 사면 거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질과 음질이 얼마나 좋은지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관람객들도 갤러리를 관람하듯 한참을 멈춰 서서 제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가격을 슬쩍 물어보니 50인치대 제품이 750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000만원에 가깝다. 동급의 삼성전자, LG전자 TV가 3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디자인에 어느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었는지 익히 알만하다.
한쪽에서는 방안에 TV를 전시해 놓았다. 영국인 엄마와 딸이 TV를 들여다 보며 무엇인가 상의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슬쩍 들어 보니 거실 벽지와 가장 어울리는 TV 색상을 찾고 있었다.
집안 분위기에 가장 알맞는 베젤 색상과 디자인을 고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재도 플라스틱부터 메탈, 나무까지 다양화했다. TV를 보는 시간 보다 거실이나 방에 놓고 그냥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로에베의 이같은 디자인 차별화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보쉬의 매장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냉장고를 만날 수 있었다. 직사각형이라는 형태에서 가장 이상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소재와 색상을 차별화했다. 특이한 점은 제품에 대한 기능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사용등급이 A+++라는 것 외에는 용량, 무게, 크기에 대한 정보 밖에 없었다. 안을 열어 봐도 특이할만한 기능은 없었다.
밀레의 주방기기 전시관에는 제품을 설명하는 직원 대신 요리사들이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줄을 서서 유명 요리사들이 만들어 내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들끼리 얘기를 한다.
주로 주방기기의 배치와 사용법에 대한 얘기였다. 싱크대 위에 놓다 보면 산만해지기 일쑤인 각종 주방기기를 전시해 놓은 제품처럼 진열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서로 하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지멘스의 주방기기 전시관에서 우연히 만난 두명의 우리나라 여성 관람객들이 뒤에서 소곤거린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냥 그대로 우리 집에 옮겨 놓으면 좋겠다." 디자인의 힘이다. 잘 디자인된 제품은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다. 가격도 비싸게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가전 업체들의 프리미엄 시장 돌파구도 여기에 있다. 디자인을 이해하고 문화를 팔아야 새로운 경쟁자로 다가온 유럽 가전 업체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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