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또 하나의 한·일전이 찾아온다. 태극전사의 올림픽 쾌거 여운이 남은 가운데, 이번엔 태극소녀의 차례다. 2년 전 한국 축구 사상 첫 FIFA(국제축구연맹) 주관 대회 우승의 제물이었던 바로 그 상대, ‘숙적’ 일본을 맞아 다시 한 번 역사 창조에 나선다.
U-20(20세 이하)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30일 오후 7시 30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FIFA U-20 여자월드컵 8강전에서 일본과 맞붙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치열한 한·일전이건만 주변 상황이 그 열기를 더한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직후 ‘독도 세리머니’에서 비롯된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는 터다. 여기에 일본축구협회가 경기를 앞두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관중 소지 금지 조치를 갑작스레 철회해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양국의 서로 다른 설욕 의지까지 더해졌다. 한국은 U-20 대표팀 역대전적에서 1무 4패로 절대 열세다. 가장 최근 맞대결인 2011 U-19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선 1-3으로 졌다. 이로 인해 월드컵 출전마저 좌절될 뻔 했으나, 준비 미흡에 따른 우즈베키스탄의 개최권 박탈로 천신만고 끝에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정성천 대표팀 감독이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이길 차례”라며 강하게 역설하는 이유다.
반대로 일본은 2년 전 수모를 되갚아주길 꿈꾼다. 2010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한국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패해 우승을 놓쳤다. 현 U-20 대표팀은 당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팀이다. 홈 이점까지 안고 있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한국을 꺾고 세계 정상을 탈환하겠다는 각오다.
두 팀의 장단점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은 피지컬과 스피드에서 우위를 점한다. ‘원톱’ 전은하(강원도립대)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전은하의 원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간판 공격수 여민지가 발등 부상을 당한 탓에 부득이하게 최전방에 섰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별리그서 한국이 넣은 4골 가운데 3골을 홀로 터뜨리며 8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소담, 이정은, 이금민 등 2010 U-17 여자월드컵 우승 주역들도 힘을 보탠다. 특히 이정은과 이소담은 일본과의 결승 당시 각각 선제골과 동점골을 뽑아내 한국의 우승에 공헌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이금민은 스피드와 돌파력을 갖춰 일본 수비진을 뒤흔들 열쇠이기도 하다.
호재도 있다. 여민지가 부상에서 회복한 것. 아직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지만 조커로서 ‘한 방’을 보여주기엔 충분하다. 여민지는 “조별리그에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기에 일본전에선 꼭 도움을 주고 싶다”라며 활약을 예고했다.
일본은 개인기와 조직력에서 앞선다. 여자 축구에서의 위상 역시 세계 최강이다. 지난해 열린 독일 여자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얼마전 런던올림픽에선 은메달까지 따냈다. FIFA랭킹은 3위로 한국(15위)에 월등히 앞선다.
청소년 대표팀의 수준 역시 높다. 폭 넓은 저변에서 배출된 유망주들이 즐비해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 조별리그에서부터 압도적 전력을 뽐냈다. 멕시코(4-1 승), 뉴질랜드(2-2 무), 스위스(4-0 승) 등을 상대로 2승 1무(10득점 3실점)를 거둬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요주의 대상은 ‘에이스’ 다나카 요코다. U-17 월드컵 당시에도 일본 공격의 중심이었다. 기량은 여전하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전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3경기 4골 2도움으로 맹활약 중이다. 한국에 대한 설욕 의지도 대단하다. 다나카는 “한국은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 2년 전 패배는 아직도 기억날 만큼 분하다”라며 필승의지를 다지고 있다. 다나카 외에도 2골을 넣은 나오모토 히카루 역시 한국 수비진이 경계할 상대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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