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지금까지 석유업계는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통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나 열사의 사막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산업의 특성을 좆듯 지금까지 세계 주요 에너지기업의 수장은 모두 남자였다. 그러나 올해 2월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했다. 남반구 최대규모 기업인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마리아다스 그라사스 시우바 포스테르(59) CEO가 그 주인공이다.
포스테르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전세계 가장 영향력있는 100대 인물에 꼽혔고, 8월에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012년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파워우먼’ 20위로 올랐다. 그녀가 선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2월 페트로브라스 이사회는 조제 세르지오 가브리엘레 CEO의 후임으로 천연가스·에너지 담당이사였던 포스테르를 지명했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직접 그녀의 임명을 승인했다. 브라질 전체 석유 생산 91%, 천연가스 90%를 생산하는 페트로브라스의 사상 첫 여성 CEO이자 글로벌 석유산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포스테르는 어려운 유년시절을 딛고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53년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주 카라팅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덟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 인근의 빈민가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매일같이 범죄가 발생하고 갱단과 경찰들의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서 그녀는 부모의 일을 돕고 학비를 직접 벌며 성장해 나갔다. 그녀는 어린시절에 대해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면서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1978년 리우데자네이루의 4대 국립대학인 플루미넨스대학교에서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리우데자네이루대학 원자력공학 석사과정을 시작한 것과 동시에 페트로브라스에 인턴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1981년 화학엔지니어로 정직원이 된 그녀는 30년 넘게 다양한 부문을 거치며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볼리비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1998년 포스테르는 당시 지방정부의 무명 관리였던 호세프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좌파 노동자당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진 이들은 평생의 동지가 됐다. 2002년 노동자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룰라 대통령이 취임하자 호세프는 에너지장관으로 지명됐고, 포스테르는 호세프의 최측근으로 브라질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석유가스산업동원프로그램(PROMINP)’ 총책임자를 맡았다.
이후에도 포스테르와 호세프는 각각 산업계와 정부를 대표해 브라질 에너지산업의 부흥과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연구를 계속했다. 포스테르는 2003년 에너지부 산하 석유·천연가스·재생에너지 담당관으로 임명된 한편 페트로브라스의 재무책임자, 가스·에너지사업부문 이사 등을 거쳤다. 호세프가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국정을 총괄하는 수석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포스테르는 별명이 ‘카베이라오(브라질 경찰특공대 전용 장갑차)’일 정도로 거침없는 추진력을 발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경기둔화로 페트로브라스가 올해 2분기 13억5000만 헤알(약 7472억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위기가 닥쳤지만 포스테르는 어떤 도전이라도 기꺼이 맞이하겠다며 자신만만하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실력과 경쟁력을 갖춘 여성들이 더욱 많이 산업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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