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일등공신…
건설업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50위내 건설회사 가운데 구조조정이 진행 중(7월초 기준)인 업체는 모두 25개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퇴출 릴레이는 ‘이제 막 시작’이라고 예상한다.
부동산 침체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것은 서민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는 건설사들이 최대 피해자다. 건설사는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막대한 토목건설의 수요를 창출하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이다. 같은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중동건설 붐은 우리의 건설업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대외신뢰도를 높여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처럼 1970~80년대 ‘건설’은 국가경제 발전의 동의어로 쓰였다. 건설업 자체가 부흥기였고 신명나게 쌓아올린 건축물은 덩달아 우리 경제도 끌어올렸다. 하지만 21세기 접어들면서 건설업은 급속도로 미약해지고 있다. 반(半)백년 역사의 건설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금융당국은 ‘문제아’ 보듯 주시한다. 그리고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모두가 부동산 침체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현재 기나긴 터널속에 갇혀있다. “건설 65년 사(史)에 있어 최악”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본격화된 부동산 침체가 5년째 계속되면서 생긴 결과다. 건설기업들의 위험은 도를 넘었다. 건설업 순위 100위권 이내 35개사가 ‘경영부실’ 상태다. 국내총생산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7년 17%에서 지난해 13.5%로 낮아졌다.
올해 2분기 국내 건설실적은 14조 9000억원으로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지난 2008년 4분기(17조)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2001년 4분기 이후 최악의 실적. 전문가들은 “일본형 건설불황이 나타나는 조짐”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1993년 부동산 거품 이후 정부·민간의 건설투자가 급감해 지난 2010년 건설투자액이 최고대비 52%까지 급감한 바 있다.
국내 건설수주액도 지난 2007년 127조9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작년 한해 문을 닫은 건설사만 1500여 곳이 넘는다”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증가세를 유지하던 건설업체 수가 감소한 것은 18년 만에 처음”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텃밭 잃고 무너지는 건설사
건설업계의 위기가 건설사들의 경영 악화를 낳는 것은 자명하다. 2008년 이후 경기침체, 공공 물량 감소, 최저가 낙찰제 확대 등 건설 환경에 악재가 겹치면서 건설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이 과정에서 대출 문턱이 낮은 저축은행을 자금 조달처로 애용한 기업들의 무분별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부실을 부추겼다. 결과는 참담했다.
내로라하는 중견건설업체 상당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업계에 ‘위기’ 신호를 보냈다. 크고 작은 건설사들이 언제 닥칠지 모를 연쇄 부도 공포에 떨고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몇 년째 침체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올해도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문을 닫는 건설사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50위내 건설회사 가운데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7월초 기준)인 업체는 모두 25개사(워크아웃 18곳, 법정관리 7곳)에 달한다. 협회 측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과 2009년에 워크아웃(7곳)과 법정관리(1곳)가 진행 중인 업체는 모두 8곳에 불과했다”며 “하지만 이후 지속된 건설경기 침체로 구조조정을 받는 건설기업수도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다. 규모 있는 건설사의 공사 현장 대부분이 많은 수의 자재 기업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퇴출에 ‘공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실제로 퇴출 릴레이가 시작된 지난 2010년엔 철근의 재고량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판매부진을 겪었으며, 지난 5월에는 중견건설업체 ‘풍림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레미콘업체들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산업의 위기가 오면 중견 지역 업체들의 연쇄적인 부도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채권회수 아닌 기업 회생에 주안점 둬야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같은 구조조정이 ‘기업정상화’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오로지 ‘채권회수’의 수단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사수입금이나 자산매각대금 중 일정 부분은 신규 사업에 재투자돼야 기업이 자생력을 길러 나갈 수 있는데, 채권단이 기업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채권회수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국내건설계약액 중 구조조정기업들의 국내건설계약액 비중은 11.3%를 차지했지만, 2011년에는 4.6%에 그치는 등 구조조정 중인 25개사의 점유비중이 2008년 이후 급격히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종업원 수 역시 2008년 말 1만7022명에 달했던 상시종업원이 2011년에는 8474명으로 50.2%가 기업을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월드건설, 풍림산업, 우림건설에 이어 벽산건설까지, 올 한 해만도 회생하지 못하고 퇴출로 내몰리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대한건설협회는 이에 대해 “채권단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기업의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을 살리면서 채권도 회수하는 등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채권은행이나 대주단(건설업체를 지원하기 위하여 보험, 증권, 은행, 자산운용 등의 여러 금융기관이 결성한 단체)과의 갈등 때문에 회생할 수 있는 건설사가 기회를 잃지 않도록 ‘워크아웃 건설사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약정(MOU)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만 5곳의 건설사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무용론’ 소리까지 들었던 워크아웃제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앞으로 PF 사업을 진행 중인 워크아웃 건설사가 유동성 부족을 겪을 경우에는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PF 사업장 이외의 이유이면 주채권은행이, PF 사업장 때문이라면 PF 대주단이 자금을 대는 것. 금융감독원은 이번 조치로 워크아웃 업체가 법정관리로 옮겨간 사례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