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폴란드는 유럽 부채위기에도 안정적인 경제 성장세를 보여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2일(현지시간) 일본 노무라증권의 보고서를 인용해 유럽 위기 최대의 승자가 바로 폴란드라고 찬사했다. 하지만 폴란드의 빠른 경제성장 뒤에는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고통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폴란드 경제의 놀라운 성장 뒤에 그늘처럼 드리워진 것이 근로자들의 희생이다. 폴란드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1975시간으로 다른 유럽 국가 근로자들보다 훨씬 길다. 프랑스 근로자들의 연 평균 노동시간이 1679시간이니 폴란드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하루 1~2시간 더 일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폴란드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은 독일 근로자들의 20%에 불과하다. 독일 근로자의 생산성이 폴란드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폴란드에 가격 경쟁력이 충분한 셈이다.
폴란드는 빠른 경제성장에도 실업률이 10%를 웃돈다. 경제위기 속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 반해 폴란드가 3~4%의 비교적 안정된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보면 높은 수준이다. 2010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폴란드의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계층은 전체 인구의 17%다. 이웃나라 체코의 경우 9%에 불과하다. 폴란드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폴란드는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과 달리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여전히 자국 화폐 즐로티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폴란드는 경제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환율을 관리하며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폴란드의 안드레이 라츠코 전 재무장관은 "유연한 환율이 수출업체에 완충재가 됐다"며 자국 경제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환율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연한 환율정책은 서민들에게 물가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물가 상승은 주택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세입자 권리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야쿱 가윌코우스키는 "2009년 전후로 임대료가 갑자기 200~300% 치솟았다"며 "상당수 노인의 경우 임대료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나앉게 됐다"고 말했다. 노인층이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것은 생활비에 비해 연금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연금생활자인 노인이나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간호사들의 경우 빠른 경제성장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5월 폴란드 정부는 연금개혁에 나서 연금 수급 대상(남성 65세, 여성 60세) 연령을 67세로 상향 조정했다. 재정지출 축소로 재정 건전성을 드높이겠다는 판단에서다. 폴란드 경제의 성공 배경에 탄탄한 재정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연금생활자의 희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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