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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진관사에서 '글자혁명'을 모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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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비밀 TF팀 성삼문·신숙주·박팽년


[서울스토리]진관사에서 '글자혁명'을 모의했다 진관사 독서당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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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수백년전 아예 강제로 일년 이상 유급휴가를 줬다고 하면 믿어질까 ? 세종은 평소 집현전 학사들에게 공부와 과제를 무진장 내줬다. 업무에 지친 그들은 퇴근 후 과외공부까지 해야했다. 알고 보면 세종은 백성들한테나 성군였던 모양이다. 비록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싱크탱크의 엘리트들였던 집현전 학사들이었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불만이 당연했다. 이에 변계량의 건의에 따라 '방해받지 않고 집중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거나 공부해야할 학사'들을 선발해 특별히 집에서 공부하도록 허가했다.


이같은 사가독서(賜暇讀書)는 특별 유급휴가로 몇개월에서 많게는 2년 이상 주어졌다. 지금으로치면 일종의 안식년인 셈이다. 요즘 우리도 휴가철을 맞았다. 학수고대하던 시간이다. 수십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한 일년 정도 어디서 푹 쉬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보지 않은 직장인이 없을 듯 싶다. 한편으론 세종 때 학사들이 부럽기도 하고,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공부하러 휴가를 떠났으니 말이다.

아무튼 첫 수혜자로 권채, 신석견, 남수문 등 젊은 학사들이 뽑혔다. 이후엔 성상문, 신숙주, 박팽년 등 '훈민정음' 비밀 창제(TF)팀 일원들이 주로 선발됐다. 실록에 보면 세종은 휴가를 떠나는 학사들에게 "너희 젊은이들은 장래가 있으므로 지금부터 그 이름을 지우고 각자 집에서 전심 독서하라"고 당부했다. 참 독한 임금(?)이 아닐 수 없다. 분명 특별휴가인데 집에서 책을 읽으라니...아마도 학사들중에는 "책 보고 공부하는게 무슨 휴가냐 ?"고 투덜거렸을 법도 하다. 세종한테야 책 보는게 휴식이었는지 모르지만.


[서울스토리]진관사에서 '글자혁명'을 모의했다



학사들은 '집에서 공부하라'고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집에 있으려니 아이들이 소란스럽고, 종종 관에서 업무를 물으러오고, 친구들도 술 마시자고 찾아오니 공부가 될 턱 없었다. 또 한가할 때는 집에서 늦잠도 자고, 정시 출퇴근이 사라지자 꼭 실업자가 된 듯한 기분에 빠진 학사들도 있었다. 그래서 휴가받은 학사들이 찾아간 곳이 지금의 진관사였다. 성상문, 박팽년 등이 안식년 동안 진관사에 머물며 공부했다는 기록이 여럿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서로 시문을 주고받고 산보하며 학술 토론도 벌였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진관사 앞 계곡에는 토종닭 백숙이나 매운탕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다들 무허가 건물이었다. 워낙 솔밭이 풍성하고 계곡도 맑아 등산객이나 쉬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무허가 식당들은 최근 몇년전 은평뉴타운이 건설되면서 철거됐다. 지금은 계곡과 솔밭을 따라 일주문까지 걸어올라가는 길이 쾌나 아름답다. 진관사는 입구에서조차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산세에 깊이 파묻혀 있는 형국이다. 진관사 법해스님은 절 자리가 창학포란형으로 명당이라고 설명한다. 진관사 입구에선 북한산 둘레길이 구파발과 고양시 대자리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진관사 인근은 등산객과 올레길을 걷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 때 창건된 천년사찰로 6.25 전쟁 때 전소됐다가 다시 지어졌다. 조선시대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주요한 행사가 자주 열렸던 절이다. 그런 진관사가 세종 때는 집현전 학사의 휴가를 겸한 학습장였다. 말하자면 집현전 별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방학철을 맞아 '어린이 여름 불교학교'가 한창이다. 절이 운영하는 템플 스테이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진관사는 사찰 음식 연구소를 두고 산사 음식 보급에도 열심이다.


[서울스토리]진관사에서 '글자혁명'을 모의했다



하지만 수백년 집현전 학사들이 머물던 진관사 독서당 터는 미궁으로 사라져 버렸다. 6.25 전쟁 당시 진관사가 불타버려 각종 기록이 사라지는 통에 정확한 위치 정보가 유실된 탓이다.위대한 유산에 얽힌 장소라기엔 비운스런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출가한 이래 30여년 동안 진관사에서 수행해온 법해스님은 진관사 맞은 편에 독서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자리는 터 양옆으로 두 갈래 계곡이 흐른다. 현재 외빈용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자리 바로 위다. 솔밭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외부로부터는 전혀 드러나지 않아 공부하고 사색하기에는 적당한 장소다. 물론 맞은 편이라고 해봐야 진관사 정문으로부터 50m거리다.


법해스님은 "십수년 동안 독서당에 대한 기록이나 정확한 장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도 절의 내력이기 때문에 여전히 찾고 있다. 이곳에서 집현전 학사들이 공부했다는 건 분명한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법해스님은 전쟁으로 소실된 진관사 터에 대한 복원작업이 진행중여서 언젠가는 정확한 위치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서당은 단순히 집현전 학사들의 학습 및 휴가장소가 아니라는데 의미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미스테리 중의 하나인 한글 창제가 어디서 어떻게 이뤄졌느냐는 점이다. 실록에조차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엄청난 국가 프로젝트가 사전ㆍ사후에조차 철저히 비밀이 유지됐다는 점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정통한 학자들은 한글 창제 장소를 세종의 집무실인 경복궁 강녕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진관사도 한글 창제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세종 당시 진관사 스님 중 한 분인 신미대사가 첫 한글서적인 '석보상절'을 제작했으며 집현전 학사들과의 연관이 깊었던 탓이다.


이대로 한말글협회장은 "일부에서는 진관사가 한글 창제의 비밀장소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으나 위험한 견해"라면서도 "진관사가 여러 부분에서 한글 창제에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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