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주 이름 딴 '도요다아파트'
서울 수복후 UN군 호텔로 사용
가난한 주민들은 재개발 원하고
서울시는 '미래유산' 후보 지정
[아시아경제 김종수 기자]비가 내린다. 우산 위를 내리치는 빗발이 거세다. 도심 위 모든 사물들의 형상과 색감은 오감(五感)을 과거로 되돌린다.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이 곳에서 열리고 있는 이색전시회는 이제 너무 낡고 허름해 아무런 눈길도 받지못하는 초창기 아파트들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전후 복구사업과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거국적 명분으로 시작된 아파트 개발 사업의 초기 모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작가 최중원의 말에서 확인되듯 예술은 때로 한국사회의 중심 또는 주류를 가로지른다. 사진 역시 그러한 구조역학 또는 동력학을 따라서 대한민국을 가로지른다. 사진이 토해내는 이미지들이 그 길을 열어간다.
최중원 작가의 카메라에 담아낸 아파트들도 그랬다. 견뎌온 세월만큼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뿜어낸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로 관심을 받았던 충정아파트, 명동과 남대문 시장 주변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중앙난방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회현시범아파트, 황학동 사거리에서 한눈에 띄었던 동대문아파트…. 지금은 비록 역사의 뒤안길에 있지만 역사의 굵직굵직한 주름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최 작가는 "아파트는 단순히 무기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겪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실에 적응하고 환경과 타협하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덧붙인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 주거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그 안에서 삶을 공유했던 이들의 이야기, 표면에 드러나있지 않은 정보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건축물은 우리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옛 건물들도 현재 우리 삶과 결부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옛 건축물을 통해 우린 지난 삶을 돌아보고, 현재 속에서 미래를 향하며 옛 이야기의 기억을 더듬는다. 근현대 우리 삶의 편린이 뭍어있는 초창기 아파트. 오늘에 있어 그 궤적은 시간을 초월해 가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역사의 산증인 '충정아파트' = 장마가 살짝 빗겨간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를 찾았다. 시간을 나이테처럼 두른 그곳에서 국내 아파트의 머나먼 옛 이야기를 엿볼 수 있을까 해서다.
아현교차로를 지나 서대문역쪽으로 가다보면 버스정류장을 앞에 두고 녹색으로 칠해진 충정아파트가 보인다. 올해로 82살. 국내 현존하는 최고령 아파트다. 입구에는 '고물장수 출입금지' 쪽지가 붙어 있다. 가끔 외부인이 들어와 세간을 집어가기라도 한 모양이다. 입주민들이 낯선 사람의 출입에 매우 민감하다며 사진촬영 등은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인근 상인들이 귀띔한다.
5층짜리 이 건물에는 현재 각 층마다 9가구가 입주해 있다. 7.5평부터 39평까지 평형도 다양하다. 1층에는 편의점, 지물포, 사진관, 음식점 등이 입주해 있다.
세 동의 건물이 중정(中庭)을 둘러싸고 모여있는 독특한 형태다. 중정에 들어서니, 지금은 기능을 잃은 거대한 굴뚝이 훌쩍 먼 과거의 세월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한다. 복도는 항아리, 세탁기, 자전거 등 넘쳐난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다.
◆근대화·산업화의 아픈 상흔 고스란히 = 장림종&박진희가 2009년 저술한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에 따르면 193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의 소유주가 일본인 도요다 다네오(豊田種雄)였다. 충정아파트는 그 이름을 따서 '도요다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규모는 지하 1층~지상 4층에 연면적 1050평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던 당시 이 건물은 지상 8층짜리 반도호텔(현재 롯데호텔 자리)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유명했다. 주로 일본인들이 임차해 살았고 최신 설비를 갖췄다고 해서 젊은 중산층이 선호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시작된 충정아파트의 운명은 한국 전쟁 이후 질곡의 세월을 걷게 된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아파트 지하실에서 양민을 학살했다. 또 미국은 서울 수복 이후 '트레머 호텔'로 부르며 국제연합(UN)군 전용 호텔로 사용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1959년 당시 55세였던 김병조씨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이유는 그의 아들 6형제가 한국전쟁에서 모두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현충일 행사 때 6개의 유가족 기장을 가슴에 달았고,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미국도 이에 감격해 1961년 이 건물을 한국정부에 양도했고 한국정부는 이를 김병조씨에게 불하했다. 당시 싯가 5000만원.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그는 건물 이름을 '코리아관광호텔'로 바꾸고 5층에 가건물을 설치했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돼 김병조의 이런 행각이 사기였다는게 밝혀졌다. 결국 사세청(지금의 국세청)이 건물을 몰수했다.
이후 몇명의 건물주를 거쳐 결국 1975년 건물 저당을 잡고 있던 서울은행으로 명의가 넘어갔다. 건물은 다시 호텔에서 아파트가 됐고 명칭도 '유림아파트'로 바뀌었다.
1979년에는 건물형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바로 건물 북쪽을 지나는 충정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건물의 북쪽 일부가 뜯겨나갔다.
이 과정에서 건물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 전용공간이 잘려나간 세대에서 방을 넓히기 위해 중정쪽으로 별도의 계단과 복도를 달았다. 이처럼 충정아파트는 우리 근대화와 산업화의 아픈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 '미래유산' 추진…주민들은 '재개발' 원해 = 지금까지 우리네 아파트들은 대략 서른 살을 넘기지 못 했다. 사용성, 경제성, 거주성 등 많은 이유로 30년이 되면 으례 철거하고 재개발을 한다. 어둡고 좁은 복도, 벽의 얼룩과 균열은 충정아파트도 어느날 없어질 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쓸어버리기엔 그 공간이 안고 있는 시간의 켜가 너무 아깝다.
특히 우리나라 초기의 아파트들은 그동안 기록과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공개적으로 논의되거나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심하게 훼손되거나 재건축 또는 재개발로 말미암아 곧 사라질 상황을 맞이한 '오래된 아파트'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서울시를 중심으로 근대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당연히 충정아파트에도 많은 시선이 쏠린다. 특히 문화재청이 충정아파트를 문화재로 등록해야 된다는 이야기나 서울시가 매입해 역사문화공간으로 사용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시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시민 제안으로 충정아파트는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 후보에 올라있다"면서 "현재 위원 선정 작업중인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꾸려지면 활용 또는 보존방안 등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7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동안 방치돼 왔던 근현대 유산을 시민과 함께 적극 발굴·보존해 2000년 고도 서울의 역사성을 이어가겠다"면서 시민제안과 자치구 수요조사 등을 통해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을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매입자금이 수백억원대에 이르는데다 특히 입주민들이 재개발을 희망하고 있다"면서 "시가 직접 매입해 기념전시관 등으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실제 입주민들은 20여년 전부터 아파트 재개발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주민들간 이해 상충 등으로 아직까지 성사되진 못 했다.
한 입주민은 "문화시설 등으로 지정될 경우 법적으로 여러가지 제약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면서 "재개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정로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박모 대표는 "아파트 재개발이 계속 지연돼 오랫동안 거주해왔던 주민 상당수가 노후화된 시설 탓에 이 곳을 떠났다"며 "3년 전쯤 1건이 거래된 이후 매매는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역사적·문화적 대의를 외치며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 싶다. 하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화이트보드 지우듯' 깨끗이 없애고 그 '도시의 DNA'마저 증발시켜 버리는 현실 또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종수 기자 kjs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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