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구단은 지난 1월 10일 대만인 투수 천웨인을 영입했다. 3년 동안 총 1130만 달러(약 129억 원)를 받는 조건. 자격은 충분했다. 지난 시즌까지 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즈에서 7년 동안 36승 30패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도전 소식과 동시에 그는 대만 타이완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레이 포이트빈트 볼티모어 국제담당 부사장은 직접 자리를 방문, 천웨인에게 유니폼을 입혀줬다. 미국 언론과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바라보는 눈은 대체로 무난했다. 특히 최고 구속 155km에 높은 점수를 줬다. 우려도 있었다. 일부에서 3년이라는 적지 않은 계약기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미국 야구 격주간지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볼티모어를 담당하는 윌 링고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입단 공식 발표 하루 전인 1월 9일 야구팬들과의 인터넷 채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구위를 갖췄다. 정교함만 동반된다면 큰 성공이 기대된다. 지난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142km였다. 줄어든 구속은 외복사근과 왼발 부상 탓이 컸다. 몸 상태는 최근 호전됐다.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는다. 2009년 뽐냈던 146km의 직구 평균구속과 155km의 최고 구속을 분명 재현할 것이다. 지난 시즌 5.14까지 떨어진 9이닝 당 탈삼진 수도 8.01개를 잡아냈던 2009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천웨인은 전반기까지 치른 17경기에서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103이닝을 던지며 7승 5패 평균자책점 3.93을 기록했다. 9이닝 당 탈삼진 수도 6.85개다. 이는 승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적이다. 다르빗슈는 16경기에서 102.2이닝을 던지며 10승 5패 평균자책점 3.59의 성적을 남겼다.
일본 프로야구 두들기다
천웨인은 1985년 7월 21일 대만 가오슝 현에서 태어났다. 가오위엔 공업상업고교 시절부터 그는 특급 유망주로 분류됐다. 마운드에서 최고 구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렸고 스위티히터로 나선 타석에서도 맹타를 휘둘렀다. 이 가운데 가장 빛을 발휘한 건 탈삼진 능력. 불안한 제구에도 불구 강속구만으로 타자들의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한 경기에서 22개의 삼진을 잡아낸 적도 있다. 대만 야구계가 천웨인을 주목한 건 당연했다. 고교생 신분이었지만 2002년 쿠바에서 열린 대륙간컵 야구대회 출전 명단에 이름을 포함시켰다. 잇단 주목에 천웨인은 2003년 야구특기생으로 대만체육대학에 진학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다. 꿈은 바로 이뤄지는 듯했다. 메이저리그 8개 구단이 1학년인 그를 두고 영입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천웨인 영입에 성공한 건 의외의 구단이었다.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천웨인이 일본 프로야구에 발을 내딛은 건 다이호 야스아키 주니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의 활약 덕이 컸다. 주니치와 한신 타이거즈에서 14년 동안 1루수, 좌익수 등으로 활동한 그는 1994년 센트럴리그 홈런왕(38개)에 올랐던 강타자였다. 일찌감치 천웨인의 능력을 눈여겨본 다이호는 야구 월드컵이 열린 쿠바까지 쫓아가 주니치 입단을 설득했다. 끊임없는 구애에 천웨인은 계약금 1억 엔(약 14억 4천만 원), 연봉 1200만 엔(약 1억 7천만 원)을 받는 조건에 일본행을 결심했다. 계약금은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던 9개 구단의 제시액 가운데 가장 많았다. 파격적인 배팅에는 두 가지 이유가 뒷받침됐다.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투수라는 점과 강한 체력이다.
주니치 구단은 천웨인에게서 제2의 이마나카 신지를 기대했다. 이마나카는 1993년 17승 7패 평균자책점 2.20 247삼진을 기록하며 투수 부문 3관왕에 올랐던 주인공이다. 그해 선발 등판한 30경기 가운데 14경기를 완투로 장식할 만큼 엄청난 체력과 탈삼진 능력을 자랑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6km였지만 빼어난 볼 끝의 움직임을 앞세워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프로무대에서 14년(1989년-2001년) 동안 남긴 성적은 91승 69패 74완투 16완봉 1129탈삼진 평균자책점 3.15다.
제2의 이마나카 신지로 거듭나다
일본 프로야구의 벽은 높았다. 천웨인은 ‘이마나카 2세’, ‘이마나카 2호기’라는 별명에도 불구 입단 첫해인 2004년 1군에서 한 개의 공도 던지지 못했다. 그해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야구본선에 대만 국가대표로 선발돼 12개월의 병역의무를 면제 받은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 이듬해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10경기(19.1이닝)에서 남긴 평균자책점은 6.05에 불과했다. 2006년 그는 부상까지 당했다. 내내 팔꿈치 통증에 시달려 2군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다. 정밀검진을 통해 드러난 병명은 왼 팔꿈치 피로 골절과 왼 팔꿈치 인대파열. 천웨인은 바로 나고야의 한 병원에서 4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이후 기나긴 재활에 돌입했다.
주니치 구단은 천웨인을 선수단 명단에서 말소시켰다. 대신 육성선수로 재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한 가지 옵션이 붙었다. 3년(2007년-2009년) 동안 구단이 일방적으로 방출을 할 수 없다는 안전장치였다. 연봉도 600만 엔(약 8600만 원)을 받았다. 육성선수의 연봉 상한선은 240만 엔(약 3500만 원)이다. 재활에 몰두할 수 있도록 구단이 내놓은 배려에 천웨인은 화답했다. 구속 상승과 제구력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집중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2008년 스프링캠프에서 연일 강속구를 선보이던 천웨인을 6선발투수로 내정했다. 그리고 그해 4월 2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천웨인은 반등의 시발점을 마련했다. 선발투수 야마모토 마사가 근육통으로 2회 자진 강판하자 바통을 넘겨받아 9회까지 7.1이닝을 2피안타로 틀어막았다. 일본 프로야구 첫 승이었다. 경기 뒤 그는 “비디오를 통해서만 봤던 요미우리 타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 기쁘다. 이 감격을 나를 데려온 스카우트 다이호와 함께 만끽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첫 승을 따낸 뒤 천웨인은 이후 롱릴리프로 경기에 자주 투입됐다. 그래서 첫 선발승을 7월 16일이 되어서야 챙겼다. 제물은 이번에도 요미우리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본선을 다녀온 뒤에도 승승장구는 이어졌다. 9월 22일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상대로 첫 완봉승을 따내는 등 호투를 거듭, 시즌을 7승 6패 12홀드 평균자책점 2.90으로 매듭지었다. 상승세의 비결은 수술 뒤 빨라진 직구 구속이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직구 최고와 평균 구속은 각각 150km와 141km였다. 2008시즌 최고 구속은 155km로 빨라졌다. 직구 평균 구속도 145km로 상승했다. 재활 당시 함께 꾀한 안정된 제구력이 더 해지며 천웨인은 114.2이닝동안 107개의 삼진을 솎아냈다. 반면 볼넷은 33개에 불과했다. 그 사이 연봉은 600만 엔에서 3500만 엔으로 6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2008시즌의 경험은 경기 운영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주니치 구단이 눈여겨본 천웨인의 잠재력은 이듬해 폭발했다. 4월 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 6이닝 3피안타 무실점 승리를 시작으로 승승장구를 거듭, 이내 일본 프로야구를 접수했다. 가장 빛을 발휘한 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 4경기에 선발 등판해 33이닝을 소화하며 3승(1완봉) 무패 평균자책점 0.82를 기록, 생애 첫 월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그해 천웨인이 따낸 승수는 8승(4패)에 머물렀다. 23번의 선발 등판에서 19차례 퀄리티스타트를 선보였지만 무려 11경기에서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54의 평균자책점을 봐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8승 가운데 4승은 완봉이었다. 선발투수로 처음 풀타임 시즌을 보낸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성적. 비결은 직구였다. 천웨인은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옆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를 비롯해 커브, 스플리터, 투심 패스트볼 등 다양한 구질을 던지지만 이전부터 변화구의 위력이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다. 직구는 달랐다. 2009시즌 피안타율은 0.183으로 리그 최고의 직구를 던진다는 후지카와 규지(한신)보다 낮았다. 리그 1위였다. 위력은 코스별 타율에서도 입증된다. 일본 프로야구 기록을 관리하는 데이터 스타디움에 따르면 당시 천웨인의 코스별 피안타율은 단 한 곳도 3할을 넘기지 않았다. 가장 높은 수치를 남긴 건 한 가운데로 2할7푼5리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거 꿈에 다가서다
천웨인의 특급 활약에 주니치는 다소 우울했다. 3년 계약이 끝나 자유계약선수(FA)가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던 까닭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앞 다퉈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스포츠호치의 보도에 따르면 관심을 보인 구단은 무려 15곳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덤벼든 건 시카고 컵스. 스티브 윌슨 극동지역 스카우트 팀장을 일본에 파견해 여러 차례에 걸쳐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타진했다. 천웨인은 잇단 구애를 뿌리치고 주니치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연봉 재계약을 마친 뒤인 2009년 12월 22일 일본 취재진 앞에서 “나의 꿈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이다. 구단이 내년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을 통해서라도 이적을 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이적 절대 불가’를 외치던 주니치 구단은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1월 4일 니시카와 주니치 사장은 “천웨인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구단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면 보내주겠다”라고 말했다.
화려한 주목 속에 맞은 2010시즌 천웨인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요시미 가즈키에 이은 2선발로 낙점돼 시즌 첫 등판을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변화구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 간파돼 평균자책점은 2009시즌보다 2배 가까이 올랐지만 시즌 내내 2점대를 유지했다. ‘여름의 사나이’답게 7월에는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하며 월간 MVP도 수상했다. 시즌을 13승 10패 평균자책점 2.87로 매듭지은 천웨인은 이어진 저팬시리즈에서도 2경기에 선발 등판해 2점만을 내주며 1승을 따냈다. 팀이 지바롯데의 파상공세(2승 1무 4패)에 밀려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 실패했지만 천웨인을 향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될 것 같던 상승곡선은 지난 시즌 잠시 주춤했다. 외복사근과 다리에 부상이 생긴 사이 직구 구속이 3km가량 떨어졌다. 직구 의존도가 높은 천웨인에게는 치명타였다. 하지만 그해 평균자책점은 2.68로 마무리됐다. 승리도 8번(10패)이나 챙겼다. ‘날지 않는 공’이라 불리는 공인구와 스트라이크 존 확대 덕이었다. 잦은 부상에도 열심히 경기를 소화해 준 천웨인에 주니치 구단은 고마워했다. 8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오치아이 감독의 퇴진과 함께 이내 천웨인을 FA로 풀어줬다.
ML에서도 통하는 직구 위력의 비밀
볼티모어에 입단한 천웨인을 두고 다수 일본과 미국의 야구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선발투수로 뛴 3년(2009년~2011년) 동안 소화한 경기당 평균 이닝이 7이닝 밑이라는 점, 일본에서 뛴 7년 동안 완투가 13경기에 불과했다는 점, 변화구의 완성도가 떨어져 직구 의존도가 높다는 점 등이다. 특히 좋은 컨디션에서도 직구 평균 구속이 145km라는 점은 발목을 잡힐 요소로 자주 거론됐다. 2011년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의 직구 평균 구속은 148km. 일본에서처럼 타자를 압도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천웨인의 직구 공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높은 코스의 공은 조금 더 떠오르고 낮은 코스의 공은 싱커처럼 살짝 떨어지며 들어온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볼 끝이 위력적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메이저리그 통계를 살펴보자. 리그의 왼손투수들은 직구 구사에서 143.7km의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 동시에 평균 22.6cm의 상하 움직임과 14.8cm의 좌우 움직임을 일으켰다. 천웨인은 조금 다르다. 직구의 평균 구속은 146.1km인데 29.6cm의 상하 움직임과 13.6cm의 좌우 움직임을 보였다. 천웨인은 직구(투심, 커트패스트볼 등 변종 직구 포함) 비율이 64.5%에 달하는 파워피처다. 직구의 스트라이크 확률은 68.6%로 매우 높다. 헛스윙 확률 역시 9.1%로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위력적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인 10%에 근접한다. 매력적인 요소는 하나 더 있다. 직구의 피안타율은 2할3푼8리로 시즌 피안타율 2할4푼8리보다 낮다. 천웨인은 15.6%와 13.7%의 비율로 각각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던졌다. 두 구종은 직구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오는 타자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주효했다. 체인지업은 13.6%, 슬라이더는 8.4%의 비율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는 공격적인 투구 덕에 가능한 수치다. 천웨인의 스트라이크 확률은 64.5%. 특히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효과적인 승부를 펼친다. 천웨인은 올 시즌 17경기에서 121명의 왼손 타자와 314명의 오른손 타자를 상대했다. 오른손 타자에게 그는 주로 몸 쪽 승부를 펼쳤다. 그 결과 피안타율 2할4푼2리 피OPS(출루율+장타율) 0.712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왼손 타자를 상대로도 피안타율은 2할5푼2리 밖에 되지 않는다. 피OPS는 0.773이다.
그렇다면 다른 왼손 투수들보다 빠르지 않은 직구 평균 구속을 타자들이 빠르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하체의 효과적인 활용, 탁월 허리 꼬임, 강한 손목 힘과 악력으로 공을 강하게 채주는 점, 오른 어깨가 열리지 않으면서 빠른 팔 스윙으로 공을 던져 타자들의 타이밍 포착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 등이다. 선발투수는 하체의 힘과 신체 밸런스가 모두 뒷받침되어야 꾸준히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 천웨인의 직구 움직임을 극대화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건 허리의 활용이다. 투구 동작에서 활시위가 당겨지듯 허리를 크게 꼬았다가 던진다. 공의 좌우상하 움직임에 탄력이 더해지는 이유다.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박찬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한 어깨와 탄탄한 하체를 이용,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건 허리의 꼬임각을 활용한 직구의 지저분한 움직임이었다. 당시 박찬호의 높은 직구에 대해 많은 타자들은 “공이 눈앞에서 떠오르는 느낌”이라고 했다. 당시 모습은 높은 코스의 공을 던져 헛스윙, 뜬공 등을 유도하는 천웨인과 꽤 흡사하다. 더구나 천웨인은 주니치 시절부터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기로 유명했다. 몇몇 타자들이 “볼링공이 날아오는 것 같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이는 리그 최정상급의 손목 힘과 악력에서 비롯된다. 강한 손목의 힘은 투구 시 체중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어주고, 강한 악력은 공에 많은 회전으로 연결된다. 이는 오승환이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직구를 던진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까다로운 투구 폼도 빼놓을 수 없다. 타자들은 일반적으로 빠른 팔 스윙을 가진 투수에게 약하다. 그래서 많은 투수들은 타자들이 치기 까다로운 투구 폼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왼손 투수들은 왼손 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공이 멀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 팔의 움직임을 최대한 숨긴 뒤 사이드암에 가까운 팔 높이에서 공을 놓는다. 천웨인은 다르다. 왼팔의 움직임을 최대한 감추는 듯 보이지만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위에 둔다. 대신 빠른 팔 스윙으로 투구 폼을 간결하게 가져간다. 이 같은 폼에서 팔 스윙을 빠르게 가져가면 반대편인 오른쪽 어깨가 빨리 열리며 제구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원 소속 구단인 주니치는 천웨인의 빠른 팔 스윙에 주목, 특유의 투구 폼이 가지는 속성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 같은 투구 폼이 빠른 공을 던지는 비결이자 타자 입장에서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간에 걸쳐 오른 어깨가 열리는 것을 교정한 천웨인의 투구 폼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제구력을 뽐내고 있다. 타자들의 타이밍 포착까지 어렵게 만들어 데뷔 첫 해부터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천웨인에게도 약점은 있다. 앞서 언급한 변화구의 완성도가 낮다는 점이다. 직구 위주의 투구 패턴 탓인지 지난 시즌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 완투 경기는 13차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의 활약에서 변화구는 빼놓을 수 없다. 64.5%의 비중으로 직구를 던져 그 사이 변화구가 효과적으로 먹힌다. 변화구의 구종별 헛스윙 확률을 살펴보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건 15.6%의 비중으로 던지는 체인지업으로 12.8%다. 6.3% 비율의 슬라이더와 13.7%의 슬라이더는 각각 10.6%와 8.4%로 그 뒤를 잇는다.
아직까지 위력적인 직구에 더해지는 변화구의 조합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세가 계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천웨인이 즐겨 구사하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는 각각 23.3%와 25.6%의 확률로 인플레이 타구가 된다. 특히 슬라이더는 5월 한 달 동안 65.6%의 스트라이크 확률을 기록했지만 헛스윙 확률이 8.6%에 그쳤다. 반면 인플레이 타구 연결 비율은 31%였다. 이는 오른손 타자들이 몸 쪽으로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노려 쳐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피안타율 3할2푼6리로 연결되는 슬라이더는 더 이상 난공불락의 구종이 아닌 셈이다. 실제로 그의 슬라이더는 상하 움직임 4cm 좌우 움직임 2.4cm로 다소 밋밋한 편이다. 평균구속 역시 134.4km로 메이저리그 평균(135.4km)에 미치지 못한다. 천웨인은 이를 인식, 6월 오른손 타자와의 대결에서 슬라이더의 구사 비율을 대폭 줄였다. 대신 체인지업과 커브의 구사를 돌파구로 삼았다. 체인지업은 천웨인의 변화구 가운데 가장 매섭다고 평가받는다. 상하 움직임 21.9cm 좌우 움직임 22.5cm을 앞세워 60.9%의 스트라이크 확률을 기록하고 있다. 체인지업의 구종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투구가 위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류현진, 메이저리그 진출 성공 거둘까?
천웨인의 메이저리그 승승장구를 보며 많은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류현진(한화)의 성공을 장담한다. 류현진은 올 시즌 14경기 선발 등판해 최고 구속 154km, 평균 구속 142.8km를 던진다. 그 덕에 93이닝 동안 11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9이닝 당 탈삼진은 11.3개에 이른다. 메이저리그 성공 확신에는 직구만 포함되지 않는다. 수준급의 서클체인지업과 올 시즌 구사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 슬라이더도 함께 거론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베테랑 스카우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3년여 전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지켜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대회 뒤 국가별로 주축선수들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했다. 류현진은 여기에서 종합평가 5위를 받았다. 한국 선수단 가운데서는 1위였다. 그런데 그는 직구 위력을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오히려 전체 랭킹 9위에 오른 김광현(SK)과 삼성의 정현욱이 찬사를 받았다. 류현진에 대해 스카우팅 리포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데이비드 웰스(1987~2007 21시즌 239승 159패 평균자책점 4.13)를 연상하게 하는 완급조절을 이용한 피칭이 돋보인다.”
이들의 눈은 류현진을 정통파가 아닌 기교파 투수에 더 가깝게 분류했다. 전체 18위를 차지한 윤석민(KIA)도 고속 슬라이더를 칭찬받았지만 직구 위력에 대한 거론은 없었다.
올 시즌 뒤 포스팅을 통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류현진은 직구 평균 구속 증가에 주안점을 두고 시즌을 임한다. 145km 이상이면 천웨인이 받은 연봉 4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0만 달러 이상의 포스팅 금액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문제는 직구의 체감 위력과 볼 배합 시의 코스 선택이다. 류현진의 직구에 대해 한 일본야구 관계자는 “스피드도 빠르고 큰 키를 활용한 높은 타점에서의 투구도 돋보인다. 그렇지만 포수 미트까지 ‘쾅’하고 꽂힌다는 느낌은 약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직구를 밀어서 던진다는 느낌이 든다”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평가는 손목 활용에 대한 기대치를 다소 낮게 만든다. 타자에게 빠른 체감 구속을 안기려면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강한 손목 힘을 이용한 체중 이동, 던지는 팔을 최대한 감추는 능력, 빠른 팔 스윙 등이 필요하다. 이는 스기우치 도시야(요미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의 직구 평균 구속은 135km, 최고 구속은 143km다. 빠르지 않은 직구에도 스기우치는 올 시즌 9승 2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103이닝을 던지며 11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9이닝 당 탈삼진 수치는 9.87개다.
류현진에게서 우려되는 점은 두 가지 더 있다. 올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의 상승을 노리면서 위력적으로 평가받던 서클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과 제구력이 모두 망가졌다. 류현진은 그간 낮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거나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져나가는 두 가지 서클체인지업을 바탕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이는 직구의 체감 구속 극대화도 함께 이끌어냈다. 올 시즌 그 떨어지는 각과 제구가 엉망이 되자 그는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슬라이더는 타자들의 헛방망이질을 유도하는데 적잖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강점인 완급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잔부상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왼, 오른손 타자 관계없이 바깥쪽 코스 위주로 직구 볼 배합을 가져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류현진은 올 시즌도 타선의 빈약한 득점 지원과 형편없는 팀 동료들의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그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따로 있다. 바깥쪽 직구를 스트라이크로 잡아주지 않는 심판이다. 한국에서는 몸 쪽 직구 승부를 많이 가져가지 않아도 아웃카운트를 늘려 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효과적인 투구를 위해선 심판이 바깥쪽 공을 스트라이크로 잘 잡아주지 않는 경기에서 과감하게 몸 쪽 승부로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올 줄 알아야 한다. 천웨인이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듯 류현진 역시 자신의 기량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말이다.
류현진은 이미 성숙한 마인드를 갖춘 선수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칭찬 퍼레이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지난 5월 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홈경기 TV 중계가 대표적이다. 6회까지 1피안타 9탈삼진으로 상대 타선을 꽁꽁 틀어막자 당시 중계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포문을 연 건 캐스터였다.
“내가 메이저리그 중계를 해봐서 아는데 류현진의 투구 모습은 C.C.사바시아와 비슷하다”
이에 옆에 있던 해설위원은 바로 “메이저리그에서도 류현진 만한 제구력을 갖춘 왼손 투수는 흔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이에 듀오는 다음과 같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 류현진의 전 구종 완성도가 천웨인보다 높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봐도 류현진의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특급이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류현진은 김선빈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내줬다. 안치홍, 나지완의 안타까지 더 해지며 한화는 이내 1-2 역전을 허용했다. 완봉을 노리던 류현진은 결국 7회를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경기는 이여상의 2타점 결승타에 힘입어 한화의 3-2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류현진은 물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사실 류현진이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사탕발림이다. 그들 대부분은 립 서비스에 능하다. 2006년 FA를 앞둔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즈·당시 히로시마 카프)에게 어느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에 가면 로이 할러데이(필라델피아 필리즈)와 같은 투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스카우트는 2008년 니혼햄 파이터스 소속이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에 대해 “1억 달러의 포스팅 비용과 포스팅 비용을 뛰어넘는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일본 특급선수들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립 서비스는 미국 현지에서도 언론을 통해 기사화가 된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립 서비스 내용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보도가 되더라도 대부분 익명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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