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각(角)이 안 선다. 민주통합당 대선주자들의 고민이다. 대선은 '각세우기'가 관건이다. 상대 후보와의 차별화로 의제설정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경제민주화의 여론 주도권을 선점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깃발'을 꽂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관통할 의제로 자리잡았다.
민주당의 한 대선주자 캠프 핵심 관계자는 6일 기자와 만나 "박 전 위원장과 대비되는 선명한 의제나 이슈를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이 캠프는 정책ㆍ메시지 라인을 총동원해 '각잡기'에 나섰다. 대안으로 동반성상ㆍ경권(경제권력)교체같은 아이디어가 계속 접수는 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그림'이 안 나온다는 전언이다.
다른 대선주자 측의 한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을 유신과 연결짓는 방식은 역풍의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질을 따지자면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의 거리가 민주당보다 훨씬 멀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에 삽입했고 민주당은 2011년 12월 새 정강정책을 제정할 때 이미 강령 1호로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었다.
'경제민주화 입법활동'에서도 민주당이 크게 앞선다.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지난 5월30일부터 현재까지 대기업규제나 공정거래 방안이 담긴 경제민주화 법안은 민주당이 27건, 새누리당이 8건 발의했다.
경제정책의 색깔을 단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조세 구상에 있어서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보수색이 짙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전날 기자와 만나 '조세부담률을 획기적으로 재조정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말하는 건 포퓰리즘 아니냐'는 지적에 "조세부담률을 올리는 건 성장과 소득향상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같은날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축사에서 "새누리당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허구",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날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늦은 감이 있다.
원인은 '김종인 효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경제민주화의 입안자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 전 위원장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기용됐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박 전 위원장은 김 전 수석에게 캠프의 정책 총괄역도 맡겼다. 당 내부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으로 잡음이 크지만 그럴수록 '김종인 효과'는 극대화된다는 분석이다. '경제민주화를 품은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투트랙 전략'이 수립된다.
민주당은 현재까지 확장성을 넓히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야권연대의 상처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보수진영은 좌로, 진보진영은 우로 이동하는 게 유리하다는 '중위투표자이론'상으로 보면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끌려가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여권에서 활동중인 한 선거전문가는 "정치적 상황이나 역사적 배경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박 전 위원장의 행보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길'과 비교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제3의길로 불리는 '우회전' 전략으로 공고했던 대처리즘을 깨고 17년만에 진보정권을 재창출했다. 자의든 타의든, 역으로 박 전 위원장이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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