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4번째로 개발된 백혈병치료제 '슈펙트'. 이 약은 '원비디'로 유명한 일양약품이 꼬박 10년을 투자해 개발했다. 한국 신약개발사(史)의 쾌거라고들 한다. 일양약품 입장에서도 원비디 후 별다른 성공작을 내지 못해 사옥까지 팔아야 했던 '한(恨)'을 풀 기회다.
그런 슈펙트의 가격이 최근 결정됐다. 약값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제약사가 협상으로 정한다. 일양약품은 경쟁품 글리벡에 비해 20∼30% 싼 가격을 협상에서 제시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결국 정해진 가격은 글리벡의 절반 수준이다.
애초 밝혔던 가격보다 왜 낮아졌냐고, 심평원 요구에 굴복한 것이냐고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에게 묻자 "우리가 정한 가격이다"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김 사장은 왜 '굴러온' 기회의 반만 취하려는 것일까.
"당연히 높은 약가를 받고 싶죠. 하지만 백혈병약은 평생 먹어야 합니다. 이윤의 극대화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어려운 환자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공익 때문에 사익을 최소화 하는 기업이라니.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러지 않을까 해서 같은 질문을 재차 해본다.
"그동안 백혈병약 시장은 독과점이었기 때문에 약값이 비쌌던 것입니다. 우리처럼 가격을 내릴 여지가 있던 거지요. 이런 이유로 후진국 국민들은 약을 먹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슈펙트의 파격적 약가는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에 큰 장점이 될 겁니다."
후발주자로서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기존 약보다 30%가 아닌 절반에 불과한 가격을 제시했고 그대로 결정된 것이다. 그렇다고 "결국 환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 경영전략일 뿐"이라고 그를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10년전 약 개발에 나서면서 국민들과 약속했습니다. 경제적인 약가로 공급하겠다고. 그 마음 여전히 변함 없습니다. 우리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니 뭐니 해서 국민적 비호감 대상이 됐는데, 이런 결정이 우리 제약산업을 위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슈펙트가 국내에서 '좋은 일'만 하고 큰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게 김 사장의 요지였다. 그는 일양약품이라는 작은 한국 제약사가 세계 시장에서 굴지의 다국적제약사와 경쟁할 때 '가격'이 큰 무기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물론 효과는 기본이다.
김 사장은 "우리는 슈펙트가 일양약품이란 특정 회사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돈 없어 죽어가는 전 세계 백혈병 환자를 살리고, 우리 제약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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