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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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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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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집 아들인지, 혹은 사위인지 참 잘도 생겼다. 누군가의 남편, 혹은 아빠라 해도 샘이 나기보단 감탄이 먼저다. 세대와 취향을 불문하고 여자라면 한번쯤 무심결에 시선을 고정했다 미소 지을 법한 남자, 배우 류진은 이를테면 ‘무사고 녹색면허’ 같은 배우다. 1996년 SBS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뛰어든 훤칠한 대학생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 류진은 세월의 흔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얼굴만큼이나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비교적 평온한 길을 걸어왔다. 사실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청춘스타였거나 어느 분기의 CF를 싹쓸이하는 톱스타였던 적은 없다. 다만 KBS <비단향꽃무>, <여름 향기>에서 한 여자에게 보답 받지 못할 순정을 바치고, <내 사랑 누굴까>와 <엄마가 뿔났다>의 복작대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고고한 미남의 기운을 뿜어냈으며, <경성 스캔들>의 매력적인 ‘나으리’로 시대의 낭만을 그려냈던 이 배우에게는 분명 드문 미덕이 있다. 잘 생겼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젠틀하지만 느끼하지 않다. 완벽한 ‘실장님’ 역할을 도맡아 했음에도 실제 별명은 ‘아줌마’다.

그래서일까, MBC <스탠바이>에서 결벽증이 있는 소심한 아나운서 류진행 역으로 첫 시트콤 연기에 도전한 그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팀에서 잘릴까 매일 전전긍긍하고, 아버지 앞에서는 떼쓰는 아이가 되며, 사랑했던 여자의 아들에게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지만 번번이 배려 받곤 하는 류진행의 캐릭터는 우리가 알고 있던 류진과 정반대로 허술하기 그지없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런 류진행조차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듯하고 따뜻한 류진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들뿐인 집에서 주부 노릇을 도맡아 하는 류진행처럼 “설거지할 때 마른 밥풀처럼 그릇에 붙어 있는 음식물 찌꺼기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까 봐 고무장갑은 절대 끼지 않는” 꼼꼼한 성격에, 극 중에서 유사 부자 관계로 등장하는 임시완과 대본 연습을 하다 로봇놀이 삼매경에 빠지는 등 나이를 불문하고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그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 미남 배우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리고 류진이 추천한 ‘나를 울게 한 영화들’ 또한 다양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그의 취향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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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1.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93년 | 리들리 스콧

“SF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상영 당시 굉장히 충격을 받은 작품이에요. 요즘처럼 CG 기술이 발달하지 않을 때 찍은 영화인데도 지금 봐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해리슨 포드가 인조인간을 인간과 분류하고 처벌하는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파헤치죠. 개인적으로 ‘명장면’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마지막에 인조인간을 연기한 룻거 하우어가 수명을 다해 죽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이 굉장히 마음에 남아요. 인조인간의 죽음인데 사람이 죽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플 정도로요.”


인간과 똑같이 생기고 지능도 비슷하고 감정도 느낄 줄 아는,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있다. 그렇다면 그 존재에게도 천부적 인권이 존재하는 것일까. 디스토피아적인 우울과 유전 공학으로 만든 인조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들 속에서도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 철학적인 질문일 것이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 앞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과 우리 사이 경계를 나누는 게 부당한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이후 <매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SF 작품 안에서 반복된다. 보는 이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하지만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추천할 만한 작품.

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2. <아메리칸 히스토리 X> (American History X)
1999년 | 토니 케이

“에드워드 노튼을 굉장히 좋아해요. 가끔 감독님들이 “너는 아픈 경험이 없어서 안 돼. 연기는 다 경험을 해봐야 돼”라는 얘기를 하실 때 저도 ‘그래, 맞아’ 생각했는데 에드워드 노튼은 그 엄청난 카리스마나 독특한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부유한 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란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의 출연작 중에 제일 인상적인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보면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굉장히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 나오는데 특히 흑인을 살해하는 장면은 공포영화보다 더 잔인해요. 결국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지만 그걸 동생이 대물림하는 걸 보게 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이죠.”


어쩌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온 질문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백인들은 흑인을 자신과 동류의 인간이라 보지 않았다. 주인공인 데렉(에드워드 노튼)이 흑인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가책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흑인에게 인간적 면모를 발견하고, 백인이 반인륜적 태도를 보인다면 과연 누가 진정한 인간인가. 이러한 성찰 없이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고 다른 존재로 볼 때 인간은 얼마나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또한 성찰보다는 분노가 더 쉽게 대물림된다는 것도.


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3. <굿바이 마이 프랜드> (The Cure)
1996년 | 피터 호튼

“슬픈 영화도 좋아하는데 사실 사랑의 아픔을 그린 멜로 영화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굿바이 마이 프랜드>는 어린 친구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린 작품인데, 이 영화를 봤던 건 저도 어렸을 때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스토리는 조금 간단해요.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옆집 친구와 같이 치료약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죠. 하지만 순간순간 감정을 너무나 잘 드러내는 아이들의 표정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울었죠. 또 지금은 저도 아빠가 되었기 때문인지 어린 아이들이 아픈 장면 같은 걸 보면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90년대 중반, 센티멘탈한 감정을 눈물로 풀고 싶었던 중고등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몰렸던 적이 있었다. 눈물 하나는 확실하게 뽑아준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사실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의 치료약을 찾으러 가는 여정은 담담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진 덱스터와 그를 위로해주는 에릭처럼 세상에서 보호받아야 할 두 어린 존재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과정을 지켜보던 이라면 마지막 덱스터의 죽음과 에릭의 표정을 보며 눈물을 참기란 어려운 일이다.


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4.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년 | 리처드 커티스

“사실 굉장히 밝은 영화잖아요. 그런데도 극장에서 보며 계속 울었어요. 내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매 에피소드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휴 그랜트 얘기나 키이라 나이틀리 얘기 모두. 사실 슬픈 영화는 극장에서 좀 울어도 되는데, 안 그런 영화인데도 감동적이어서 울게 되니까 좀 창피했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혹시 아직 안 본 분이 있다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개봉 당시 이성 친구끼리 극장에 갔다가 손 붙잡고 나오는 영화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각각의 인물들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은 보는 이의 연애 세포를 자극한다.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마크(앤드류 링컨)의 스케치북을 이용한 고백 에피소드처럼, 때로 사랑은 이뤄질 수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찾아오고 또 드러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불가항력적인 힘은 때로 다른 영화에선 비극적으로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힘으로 그려진다.


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5. <워리어> (WARRIOR)
2011년 | 게빈 오코너

“이종격투기 영화라고 해서 그냥 홍콩 액션 영화를 따라한 그저 그런 무술 영화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격투기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들 간의 애증을 풀어가는 이야기더라고요. 특히 좋았던 건, 굳이 아버지와 아들들 사이에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영화가 따분해질 수 있거든요. 그냥 현재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과거 무슨 일이 있었구나, 라는 상상을 관객에게 맡기는데 덕분에 영화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죠. 부자간의, 형제간의 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인데 결선에서 형과 동생이 싸우는 장면은 정말 울컥하는 기분으로 봤어요.”


링 혹은 옥타곤 안에 들어선 이들만이 워리어, 즉 전사가 아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현재의 고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지금 이곳에서 치열하게 사는 모든 이들이 전사일지도 모른다. 종합격투기 대회에서 재회한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워리어>의 격투 장면이 UFC 같은 실제 격투기 대회에서보다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짙은 애증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을 버린 형에 대한 동생의 앙금, 그걸 알면서도 이겨서 상금을 타야만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형의 딜레마는 철장 안에서 펼쳐지는 주먹질로 형상화된다. 물론 싸움의 승패가 갈등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다만 때로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격투기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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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나를 울게 한 영화들

어릴 때부터 ‘연예인 감’으로 손꼽혔을 법한 외모와 달리 그가 제대 후에야 우연히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고 연기를 시작한 것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출발이었지만 신인 시절 “100신 가운데 한두 신에서라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가슴으로 연기하는 경험”에 반해 16년째 연기자로 살고 있는 류진은 <스탠바이>가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이제는 감독님들도 나를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닌, 좀 다른 캐릭터로 찾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그의 말대로, 이 흠 잡을 데 없는 미중년의 새로운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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