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과장이 되어서 삼겹살을 굽고 있지 않을까요?” 10년 전, 배우가 되려고 회사를 관두지 않았으면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강지환은 답했다. 벼락스타, 아이돌, 연기파 배우. 강지환은 그중 어느 범주에도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5년의 시간을 쌓으며 천천히 이름을 알렸고, 스물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했으며 연기만으로 주목받기엔 외모가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의 선택이 없었으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도 무방했을 만큼의 현실감은 그가 지닌 무기다. 그 나이대 남자배우 중에서 신입사원으로서의 경험을 가진 이는 찾기 힘들며, 그 경험치를 뛰어넘어 캐릭터에 현실세계의 추를 다는 것 또한 그의 장기다. 강지환만이 가진 것, 강지환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
그래서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스타임에도 찌질한 남자의 전형성을 가질 수 있었고, <7급 공무원>의 재준도 멀쩡해 보이지만 허술한 본성으로 사랑스러울 수 있었다. 그렇게 그에게 주어진 것이 화려하고 번쩍이는 것이 아니었을 지라도 강지환은 늘 자신만의 몫을 해냈다. <차형사>의 비현실적일 만큼 더럽고 뚱뚱한 남자에게도 느껴지는 인간적인 호감은 그가 쌓아온 전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방질의 형사가 근육질의 모델이 되는 메이크오버가 가장 큰 동력인 영화에서 강지환은 특수 분장 없이 그것을 완수했고, 그가 믿을 수 없이 제대로 망가지는 전반부는 <차형사>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다음은 그런 그에게 궁금했던 혹은 그를 둘러싼 이미지에 대한 여섯 가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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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굉장히 꼼꼼하게 설정하고 들어갔다. 배트맨 벨트에서부터 단발머리까지 콘셉트를 사전에 다 준비했고, 맥스봉도 직접 설정했다. 뭔가를 무조건 먹어야 된다는 설정이 있어서 촬영장에 주전부리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맥스봉이 있었는데 이름이 되게 웃겼다. 이상해서 카피를 봤더니 ‘젊은 도시남녀의 영양간식’ 이라는 거다. 말도 안돼! 도시남녀랑 소시지가 무슨 상관이야. (웃음) 그게 재미있어서 중점적으로 활용했다. 인삼주에서 인삼을 꺼내 먹는 것도 원래는 없는 설정이었는데 촬영장에서 만들었다. 그런 소소한 요소들을 활용해서 깐족거리면서도 더럽고, 비호감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걸 만들려고 디테일한 작업을 많이 했다.”
“아마 그 때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으면 지금 강 과장 쯤 되지 않을까? (웃음) 회사를 딱 1년 다녔는데 직장생활은 다르게 풀면 조직생활이다. 군대 있을 때처럼 상하관계, 선후배, 지금 내가 이 위치에서 해야 되는 일 같은 걸 배웠다. 복사부터 커피심부름을 했고, 나중에는 영업하러 뛰어다니기도 했다. 대표 앞에서 피티도 해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차근차근 밟아왔던 게 지금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으로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금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사장 씹고, 부장 씹고, 소주에 삼겹살 먹고. (웃음) 어린 나이였지만 이런 일반적인 경험이 갚졌던 것 같다. 물론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에 배우 하겠다고 나왔으니 불안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 때 관두지 못했으면 계속 직장 생활을 했을 거다. 지금 자리 잡은 이곳에서 빨리 대리, 과장, 부장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도 했으니까. 하지만 왠지 후회할 것 같았다. 남자라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봐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호기어린 부분도 있었고 일단 가진 게 체력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무모하게 도전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 때의 선택이 참 다행이다. (웃음)”
“관심도 있었고, 실제로 해봤다. 최근 일본 팬미팅 때 상영한 <킬러>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연출을 그때 처음 해봤는데 더는 못하겠다. 누가 써준 것에 배우로서 생명력을 부여하고 인공호흡을 해줄 순 있지만 그 사람을 살리는 수술은 못할 것 같다. 일단 슛하면 연기를 해야 되니까. 웃거나 울어야 되고 대사를 쳐야 하는데 조명이 어떻고 감정이 어떻고 그런 걸 못 챙기겠다. (웃음) 난 그렇게 연기를 잘하거나 역량이 많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연기 하나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재주가 많고 연기할 때 감정이 바로 바로 생기는 사람이면 안 그랬겠지. 하지만 못하니까 이렇게 파는 거다. 타고나길 잘하면 여유 있게 놀면서 하고 사람들한테 좋은 형이야, 좋은 배우야 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세상은 참 공평한 거 같다. 나에게 그런 재능은 주지 않았다. (웃음)”
“꼭 멜로가 아니더라도 정극이나 몰입하는 연기를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나서 느끼는 것처럼 뭔가를 쏟아내고 상대방이 리액션을 받아내서 전달해주면 나도 모르게 떨림이 느껴진다. 그렇게 울고 나면 희열 같은 게 오는데 그게 너무 좋다. 산악인은 아니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 그분들이 느끼는 기분이 그런 게 아닐까?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집중해서 단순히 한 신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그 인물로 살고 엔딩까지 갔을 때 오는 느낌이 있다. 사실 <차형사>는 육체적으로는 정말 힘든 영화였지만 머리가 힘들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멜로처럼 날 괴롭히고 머리를 아프게 하는 작품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난 멜로배우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웃음)”
“나도 내가 까칠하다고 소문난 거 알고 있다. (웃음) 당연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차형사> 끝나고 나서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촬영 중간에도 느꼈고. 스태프들이 많이 불편해했다. 굳이 뭘 안 해도 인상자체에서 아우라가 그렇게 나왔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해진 날짜 안에 살을 찌워야 했고 연기를 해야 했고 또 살을 빼야했다. 처음 한두 번은 내가 오늘 몸이 너무 안 좋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얘기를 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연기를 해야 되는 상태에서 몸 상태까지 이러니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 것 같다. 원래도 현장에서 예민한 편인데 물 만났지 뭐. (웃음) 물론 나도 좋게 좋게 넘어가서 좋은 배우 소리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슛 들어갔을 때 잘 하는 거다. 작품이 시청률이 좋건 나쁘건, 흥행이 좋건 나쁘건, 단 한 번도 연기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던 것 같다. 100% 맞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집중을 하고 촬영장에서 그런 모습 보이더라도 하는 일에 대해서 확실히 했던 게 맞는 거 같다. 물론 노하우가 생겨서 더 여유로워지면 좋겠지. 당장은 힘들 것 같고, 시간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내가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게 있는데 일당백이란 말이다. 사실 내 팬이 100명 있다고 하면 그 중에 한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냥 대중적인 수준으로 나를 좋아하는 분들일 거다. 그런데 그 한두 명에게서 무슨 일이 있을 때 힘을 얻고, 그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중하다. 그 사람들이 없으면 많이 힘들고 망가지거나 중간에 포기했을 거다. 물론 이번에 팬들이 <차형사> 단관할 때 찾아간 건 팬서비스보다는 메시지 전달 차원이었다. (웃음) 샤우팅 좀 해달라고. 공손하게 “지환 씨” 이거 하지 말라고. <차형사> 홍보 다닐 때만큼은 일단 지르라고. 그 말하려고 갔었다. (웃음) 우리 팬들이 그동안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놔버려야 되는데, 아직까지 일본 팬들도 “지환 씨” 이러고, 이거 아닌데! 무대인사 뛰기 전에 또 얘기해야지. 뭐 아직까지는 팬들과 잘 해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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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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