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그리스 탈퇴 비상대책 각자 마련키로

21일 유로그룹 워킹그룹 전화회의서 결정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각자 알아서 마련키로 결정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로그룹 워킹그룹은 지난 21일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전화회의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되 유로존 차원이 아닌 회원국 각자의 방식으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한 유로존 관계자는 "유로그룹 워킹그룹은 유로존 각 국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마련해야만 한다는데 동의했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 유로존 차원에서 준비된 것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유로존이 그리스 위기 해법과 관련해서는 계속 이견을 보이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유로존 출범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사분오열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는 셈.

유로그룹 워킹그룹은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를 준비하는 재무차관들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관계자들인 각국 재무부 관계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같은 합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스티븐 바나케르 벨기에 재무장관은 비상대책과 관련해 정부로서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도 미리 예측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공통의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 탈퇴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해야만 하지만 이것이 그 상황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로그룹 워킹그룹은 23일 벨기에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에게도 전화회의 내용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유로존 내부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그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고 유로존 탈퇴에 대한 위험이 상당하지만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결국 독일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큰 고통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해 그리스가 고통스러운 긴축을 계속 추진토록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분데스방크와 달리 유럽 은행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대비가 돼 있지 않다며 그 파장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유럽 은행들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부채를 1조1900억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들에도 연쇄 파장을 일으켜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며 "재앙이 또 다른 재앙을 불러 스페인, 이탈리아 심지어 프랑스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UBS는 그리스가 유로를 버리면 유로 대비 자국 통화 가치가 최대 75% 평가절하돼 해외자산 부채를 지닌 개인과 기업의 파산이 잇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위험은 뱅크런이 잇따르고 있어 은행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은행의 예금은 806억유로 줄었다. 전체 예금의 3.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과 프랑스 은행의 예금은 같은 기간 동안 전체 예금 자산의 6.3%에 해당하는 2174억유로가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