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QMARK#> 왜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이 아니라 천재용(이희준)일까요? 말 한마디 다정다감하게 할 줄 모르는 천재용이 뭐가 좋다고, 사투리 쓰는 경상도 남자 어디가 멋있다고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지 모르겠어요. 당황해서 “와.. 오.. 어.. 너무 기가 막히면 이거 화가 안 나는구나”라고 말 더듬는 것도 귀엽고, 시원하게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금니까지 사랑스러워요. 천재용을 좋아하는데, 정말 몇 년 만에 주말 연속극을 본방 사수할 정도로 참 좋아하는데,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서교동에서 이 모양)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일 때 예고하나요? 잠깐 방심하는 사이 한 가득 물을 머금지 않습니까? 이희준은 그런 남자입니다.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마음 속 깊이 들어와 있는 거죠. 연기든, 사랑이든 대놓고 하는 법이 없어서 그래요. 저게 실제 대사인가, 애드리브인가? 서울말을 쓰려고 애쓰는 사투리일까 아니면 대놓고 쓰는 사투리일까? 천재용이 언제부터 방이숙(조윤희)을 좋아하기 시작한 걸까? 이런 것들이 막 궁금해지고 헷갈리기 시작하셨다고요? 환자분은 이미 이희준에게 빠져드신 겁니다. 본인이 먼저 다가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 참지 못하고 끌려오도록 만드는 것, 이게 5대 독자 천재용만의 연애 방식이자 배우 이희준만의 조련법이거든요. 자기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남자는 하늘’인 척 하다가 정곡을 찔렸을 때 눈을 껌뻑이면서 무심코 튀어나오는 “참 나, 뭐래”, 이 한 마디가 주는 여운이 환자분의 일주일을 버티게 만들죠. 서울말과 사투리 사이, 그 애매한 말투로 어쩜 그렇게 대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는지 올리브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나가면 거뜬히 우승했을 요리 실력입니다. 절정은 KBS <드라마 스페셜> ‘큐피드 팩토리’였죠. 속옷 차림으로 거실에 털썩 앉아 “요즘 되게 맘에 안 들어, 하는 짓이. 내가 뭐, 서운하게 한 거 있어? 또! 또! 어디 가노? 그 쪽으로 가봐. 먼지, 진드기, 머리카락, 벌레, 이런 거 다 너의 몫이야”라고 중얼거렸잖아요. 여기서 문제, 누구한테 하는 말이었을까요? 어머니? 부인? 딸? 아닙니다. 손수 ‘미스 청’이라는 별명까지 붙인 청소기입니다. 이만하면 노벨능구렁이노총각상 받아도 되지 않나요? 어디서 이렇게 징그럽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넝쿨째 굴러왔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큐피드 팩토리’의 시윤(박수진)이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숙이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환자분 같은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이희준이 애써 감추고 있는 속마음이 모두 보이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겁니다. 이숙이와 둘이 있을 땐 툭하면 “곰팅이”라 놀리면서도 이숙이 첫사랑 앞에서는 “방 매니저님”이라 부르며 체면 살려주고, 첫사랑한테 우는 모습 들키지 말라고 자기 쪽으로 몸 돌려주는 매너 보셨어요? 구박하는 척 하면서 챙겨줄 건 다 챙겨주고, 안 보는 척 하면서 상황 파악 다 하고 센스 있게 여자를 배려할 줄 알죠. 겉으로는 장난기도 많고 남 골탕 먹이는 재미에 사는 실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진지하고 사려 깊은 남자입니다. 생색내면서 챙겨주고 도와주면 여자 입장에서 마음을 눈치 채고 고마워할 텐데, 천재용은 여자가 자신의 호의를 아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합니다. 방귀남이 너무 멋있어서 우러러보게 되는 비현실적인 남편이라면, 천재용은 왠지 주변에 잘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남자친구 같은 스타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동호회 모임을 가든, 소개팅에 나가든 이희준처럼 은근히 잘생기고 의외로 자상한 남자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죠? 환자분, 이건 이희준이예요.
<#10_LINE#>
앓포인트: 이희준의 [오리지널 대구 남자]
-“에이, 악수는 아니다. 초딩도 아니고!”
낯간지러운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KBS <난폭한 로맨스>의 고재효 기자(a.k.a 고기자)는 진동수(오만석)의 고집에 못 이겨 박무열(이동욱)과 화해하지만, 사나이 자존심이 허락하는 수준은 딱 “미안하다”는 말까지다. 기어이 박무열 선수와 스치듯 악수해놓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두 볼을 감싸는 고기자 님, 너무 귀여운 거 아닙니까?
-“오늘 왠지 이걸 가져오고 싶더라”
심드렁한 목소리로 “오늘 왠지 이걸 가져오고 싶더라”며 손수건을 건네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천재용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오는 길에 하나 주웠다’며 툭 던질 것 같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당장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이 남자가 짜증나지만, 자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남자가 날 얼마나 생각해줬는지 깨닫게 된다. 이 손수건은 널 위해 준비한 거다, 이 손수건으로 네 눈물 닦아주고 싶다, 왜 말을 못합니까?
-“잘 도착했나?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택시 잡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숙을 보며 “말세”라고 욕할 땐 언제고, 휴대폰으로 택시 번호판을 찍는 것도 모자라 안전귀가 확인 전화까지 한다. 아까 이미 다 알려준 출근시간을 또 알려주겠다며 횡설수설하다가 드디어 “잘 도착했냐?”며 본심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결국엔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그렇게 말하면 속이 좀 편하십니까?
-“그렇게 감동적인가?”
더 이상 남는 게 없을 때까지 한없이 퍼주는 ‘큐피드 팩토리’의 소준은 진국이다. 좋아하는 여자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일부러 곡을 썼다는 진심은 “넌 내 곡 필요하지? 난 네 목소리 필요해”라는 비즈니스 마인드로,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너밖에 없다는 진심은 “내가 가진 밑천이 너밖에 없”다는 무뚝뚝한 고백으로 둔갑한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인다. “그렇게 감동적인가?” 당신 같으면 감동 안 받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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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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