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QMARK#> 이렇게 목석같은 남자는 처음 봤습니다. MBC <더킹 투하츠>의 은시경(조정석)을 보면 매번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 같아요. 융통성 없죠, 눈치 없죠, 여자 마음 몰라주죠, 환하게 웃는 법도 없죠, 심지어 드라마에서 분량도 얼마 없어요. 그런데 왜 저는 능글맞은 이재하(이승기)와 목련꽃 같은 김항아(하지원) 동지를 제쳐놓고 무뚝뚝한 은시경만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마음 같아서는 재신(이윤지)의 앵무새처럼, 은시경을 하루 종일 옆에 두고 키우고 싶어요. (삼청동에서 정 모양)
“재미없는 땁땁이”면 어떻습니까. 실제로 7살이나 어린 이승기가 너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초 동안인데! 도너츠보다 더 땡글땡글하고 앵무새보다 훨씬 더 귀여운데!! 이재하의 백 마디 말보다 은시경의 노래 한 소절이 더 듣기 좋은데!! 그래서 재신을 포함한 많은 환자분들에게는 은시경이 국왕인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잠시 흥분했군요. 은시경 본인도 인정할 정도로 답답한 성격인데 왜 이재하-이재신 남매는 은시경을 놓지 못할까요? 답답함을 극복할 만큼 믿음직스럽기 때문입니다. 매번 자신을 구박하고 놀리는 이재하에게 한 번쯤 폭발할 법도 한데, 오히려 “전하는 이미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왕이십니다. 부디 더 당당해주세요”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이재하의 외로운 속내를 달래줍니다.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공주를 꽉 안아주며 자신의 눈에 맺힌 눈물은 철저히 숨기죠. 그러나 은시경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일 잘하는 남자라서가 아니라 연애 못하는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사과의 뜻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공주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공주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땅을 쳐다보질 않나, 하반신 마비가 된 공주를 위로하기 위해 앵무새에게 ‘달려라 하니’를 부르라고 하질 않나, 차마 공주를 번쩍 안지 못해 휠체어 주변을 몇 바퀴나 서성이질 않나. 본인은 식은땀이 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목석. 그래서 공주도, 환자분도 한 번 흔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만약 환자분이 뮤지컬 배우 시절부터 조정석을 좋아하셨다면, 은시경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돼야겠네요. ‘조정석에게 이렇게 진지한 구석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으셨을 거예요. 물론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에서 순수하고 풋풋한데다 모든 여자 관객들이 그의 여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노래까지 잘 부르던 총각 선생님의 모습에서 은시경의 싹이 보이긴 했지만, 조정석은 주로 <그리스>의 로저, <펌프보이즈>의 짐, <이블데드>의 애쉬 등 코믹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었죠. 그 계보가 MBN <왓츠 업>의 병건과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로 연결됐고요. 키스를 뱀에 비유하는 엄청난 화술, 짝사랑하는 여자의 호기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야밤의 원맨쇼, 재수생이 고등학생을 사귀어도 되냐는 승민(이제훈)의 다그침에 대한 “그럼 재수생이 고등학생 사귀지, 중학생 만날까?”라는 명언까지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에서 자신만의 연애학개론을 써내려갔습니다. <왓츠 업>의 병건은 능글맞다기보다는 귀여운 학생에 가까웠어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안면근육을 총동원해 자신을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난도질하는 꿈속의 프린스”라 소개할 땐 언제고, 빨간 트레이닝복 귀신에 잔뜩 겁을 먹고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릴 땐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어주고 싶다니까요. 4년 전 처음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겁니다. 마치 냉탕과 열탕을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하루는 은시경에, 하루는 ‘납뜩이’에, 하루는 ‘벚꽃엔딩’을 부르는 조정석에 빠져계시죠?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는 환자분들을 위해 조정석은 하루빨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합니다. 두 번 합니다. 이왕 출연할 거, ‘뽀드윅’ 차림으로 기타를 들고 ‘소녀’를 불러줍니다.
<#10_LINE#>
앓포인트: 조정석의 [납뜩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리스>의 로저: <건축학개론>에서 보여준 요염한 뒤태는 7년 전 <그리스>의 ‘오리궁뎅이 로저’ 시절부터 갈고 닦은 모양이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못할 게 뭐 있나”며 뒤돌아서는 순간,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진다. “니가 원한다면 옷 한 번 벗지”라는 속삭임은 MBC <해를 품은 달>에서 중전을 위해 옷고름 한 번 풀겠다는 훤의 그것만큼이나 가슴 떨리는 선전포고다.
-<헤드윅>의 헤드윅: <건축학개론>에서 주황색 티셔츠에 새파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건 하얗다 못해 뽀얀 조정석의 피부 덕분이다. <헤드윅>에서도 ‘뽀드윅’으로 불린 조정석은 메이크업과 의상을 모두 갖춘 <헤드윅>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처럼 입고 나온 <뮤지컬 이야기쇼> 무대에서도 능글맞은 애교를 선보인다. 퇴장하는 시늉을 하더니 씨익 웃으면서 “다 준비했지잉~”이라며 앵콜곡 ‘Midnight Radio’를 불러주다니, 어떡하지 뽀?
-<펌프보이즈>의 짐: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가 두 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뽀뽀와 키스의 차이를 설명해주던 장면은 조정석의 애드리브였다. “조정석은 즉흥연기의 달인”이라는 <펌프보이즈>의 이지나 연출가의 말은 정확했다. <펌프보이즈>에서 귀여운 막내로 활약하던 조정석은 당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깨알같은 추임새와 제스처로 ‘흐린 기억속의 그대’를 열창했다. 자세히 보면, 홍록기보다 더 웃기다.
-<이블데드>의 애쉬: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열심히 해서 더 웃긴 상황을 본 적 있는가. 본인의 농담이나 장난에 정작 자기 자신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건축학개론>의 ‘납뜩이’처럼, <이블데드>의 애쉬도 정색하고 ‘조낸 퐝당해’를 부른다. 스캇(정상훈)의 손을 맞잡고 열정적으로 탱고를 추는 조정석을 보는 우리는 조낸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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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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