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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앓] 상식적으로는 나쁜데, 자꾸 재혁이가 눈에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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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앓] 상식적으로는 나쁜데, 자꾸 재혁이가 눈에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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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_QMARK#> 자기는 가영(신세경)을 만나기 위해 뉴욕까지 갔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영걸(유아인)과 키스할 뻔했던 안나(권유리)에게 화를 내질 않나, 가영의 디자인을 안나의 작품인양 포장할 땐 언제고 뒤늦게 가영에게 취중사과를 하질 않나. 상식적으로 SBS <패션왕>의 재혁(이제훈)은 나쁜 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재혁이만 눈에 들어오고, 신경이 쓰여요. 혼자 소파에 기대 술 마시는 것도 안쓰럽고, 아무도 받지 않는 수화기에 대고 제발 사과할 기회를 달라고 소리 지르는 것도 안돼 보여요. 진짜 불쌍한 건 오히려 영걸인데, 저는 왜 재혁이만 보면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요? (신사동에서 이 모양)

[Dr.앓] 상식적으로는 나쁜데, 자꾸 재혁이가 눈에 들어와요


영걸과 재혁, 두 남자를 비교해보세요. 화나면 때리고 부수고 소리 지르는 영걸에 비해, 재혁은 액션이 크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이마에 선 핏줄, 금방이라도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달싹거리는 입술에 집중을 하게 되는 겁니다. 술에 취해 오른팔로 두 눈을 가린 채 가영의 전기장판에 누운 날 생각나세요? 천천히 오른팔을 내리고 서서히 두 눈을 뜨던 그 몇 초 동안, 환자분은 숨도 제대로 못 쉬셨을 거에요. 분명 가영이한테 키스할 것 같은데, 그 타이밍이 생각만큼 빨리 찾아오지 않았잖아요. 언제 폭발할지, 언제 도망갈지, 언제 기습키스를 할지, 언제 또 울먹이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해줄지 모르는, 재혁은 그런 남자입니다. 그래서 환자분이 유독 재혁이한테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거예요. 재혁이 가영을 향해 차창 너머로 내민 손은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으스러질 것 같은, 아니 이미 깨진 유리조각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손을 잡으면 나도 아플 게 분명한데, 그걸 알면서도 그의 손을 잡아줄 수밖에 없어요. 어서, 제발 내 손을 잡아달라는 그의 간절한 눈빛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요. 생각해보면 재혁이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잖아요. 하다못해 가영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공장 아줌마들이라도 있죠. 재혁은 자신이 지켜줘야 할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없어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를수록 상처받고 아픈 건, 상대방이 아니라 정재혁 자신입니다. 시를 인용하자면 ‘시방 위험한 짐승’이고 노래 가사를 인용하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죠.

[Dr.앓] 상식적으로는 나쁜데, 자꾸 재혁이가 눈에 들어와요


<패션왕>의 재혁처럼, 어쩌면 영화 <파수꾼>의 기태도 자기 편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친구 희준(박정민)이나 동윤(서준영)에게 다정할 땐 한없이 다정했다가 한 번 욱하면 욕설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말을 믿어주고 내 옆에 있어달라는 마음이 조금 거칠게 표현된 것 뿐이죠. 그래서 극 중 기태는 아무리 웃어도 진짜 기뻐서 웃는 건가 싶고, 아무리 화를 내도 진짜 상대방을 싫어해서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늘 불안해 보였어요. 기태나 재혁이가 마냥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남자였다면 환자분이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눈과 귀가 즐거웠겠죠. 언뜻 단단하고 딱딱해 보이는 껍데기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뾰족한 유리조각이 박혀 있을 것 같은 두 남자의 마음이, 적어도 환자분의 눈에 보였던 겁니다. 조금이라도 이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영화 <건축학개론>을 추천해드립니다. 좋아하는 여자 서연(수지)을 떠올리고는 헤벌쭉 웃으며 “졸라 이쁘거든, 열라 귀엽거든”이라 친구에게 자랑하고, 용기가 없어 잠든 서연에게 입을 맞추는 승민은 기태, 재혁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이거든요. 마음은 아프지 않겠지만, 배는 조금 아프실 겁니다. 분명 경고했습니다.
<#10_LINE#>
앓포인트: 이제훈의 [내려주세요]
앞머리를 내려주세요: <패션왕>의 재혁은 특별한 날,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날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등장한다. 하지만 이제훈의 순수한 매력은 청순한 앞머리에서 시작된다. 좋아하는 여자의 졸업식 선물로 꽃다발을 준비했지만 쑥스러워서 결국 전해주지 못한 학교 선배, 강아지보다 더 귀여워서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은 회사 선배의 기름진 올백머리는 상상하기도 싫다.


넥타이를 내려주세요: <파수꾼>의 기태는 늘 교복 셔츠의 첫 번째 단추가 살짝 보일 정도로 넥타이를 헐겁게 매고 다녔다. 목을 조르듯 넥타이를 맸다면 지루한 모범생룩, 아예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면 진부한 날라리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태는 교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교복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희준과 동윤이 그냥 고등학생이었다면, 기태는 은근히 섹시한 고등학생이었다.


오른팔을 내려주세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안다. 그러나 직접 상대방의 눈을 보고 사과하기엔 죄책감이 너무 크다. <패션왕>의 재혁은 오른팔로 두 눈을 가린 채 가영에게 “미안하다”고 속삭이듯이 사과했다. 문제는 목소리만 들리고 눈빛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보시오, 이사 양반! 슬픈 눈동자 좀 보게 팔 좀 내려 보시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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