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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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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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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다수 야구관계자들은 말한다. “외국인선수만 잘 데려오면 가을야구도 충분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시즌 전 넥센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새로 영입한 앤디 밴 헤켄의 몸값은 25만 달러. 16명의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저였다. 우려는 초반 현실이 되는 듯했다. 세 차례 오른 시범경기 성적은 1패 평균자책점 4.84. 김시진 넥센 감독은 “답답하지만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울상을 지었다. 정민태 투수코치는 특별한 언급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즌이 임박하자 구단 내에는 곧 퇴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마음을 다잡았다. 헤켄의 공을 가까이서 지켜본 심판들의 호평 덕이 컸다. 구단 관계자는 “좋은 공을 가진 투수라는 평이 많았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호평에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헤켄은 15일까지 2승 1패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 선발진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5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를 선보였다. 타자를 요리하는 방법은 꽤 영리하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 초반에 그치지만 날카로운 커브, 체인지업 등에 특유 제구력을 더해 효과적으로 상대의 흐름을 빼앗는다. 사실 헤켄은 제구력이 좋기로 유명한 투수다. 마이너리그 통산 354경기에서 9이닝 당 내준 볼넷은 2.5개에 불과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경기당 허용한 볼넷은 2.4개. 반면 솎아낸 삼진은 5.2개다. 잇단 호투에 최근 김 감독은 “기대 이상이다. 선발진의 중심축이 되어줬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헤켄 영입의 일등공신은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김치현 운영팀 대리다. 지난해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체류한 미국에서 15번 비행기를 오르내리는 정성 끝에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냈다. 김 대리는 “이름값보다 최근 성적에 주목했다. 왼손투수에 가파른 상승세까지 그려 적임자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헤켄을 처음 만난 건 7월 말 오클라호마시티. 지역을 연고로 둔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트리플A 선수단의 경기를 지켜보며 국내에서의 가능성을 체크했다. 눈으로 확인한 투구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 대리는 “확보한 데이터 그대로였다. 이닝 소화, 볼 끝, 제구 등에서 전보다 나은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헤켄은 2009년 트리플A 6경기(25.2이닝)에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2010년 성적은 29경기(177.1이닝) 8승 8패 평균자책점 4.36으로 향상됐다. 지난해에는 35경기(129.2이닝)를 뛰며 9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0을 남겼다. 특히 9이닝 당 탈삼진은 7.7개로 그의 마이너리그 시즌 가운데 가장 많았다.

[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사진=정재훈 기자)


하지만 휴스턴 구단은 호투를 거듭한 헤켄을 메이저리그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직은 6월 불펜으로 바뀌었다. 김 대리는 “최근 휴스턴은 대대적인 리빌딩을 강행하고 있다. 33살의 적지 않은 나이는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헤켄은 이에 서운함을 드러낸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16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승격이 불발될 때마다 많이 좌절했다. 좋은 시즌을 보냈는데 구단에서는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게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 대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한국생활 적응 여부 파악에 돌입, 계약을 서둘렀다. 그는 “선수의 성격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실력을 그대로 발휘한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며 “훈련지 시설 담당자, 선수단 동료들 등을 만나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헤켄은 평소 말이 거의 없다. 소심하다고 오해를 받을 정도다. 좀처럼 환한 미소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 대리는 “팀 동료들로부터 무척 차분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한국생활에 곧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범경기에서 불거졌던 코칭스태프의 걱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헤켄은 지난해 미국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를 2개나 소화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판아메리카 대회와 파나마 야구월드컵이다. 총 4경기에 나선 까닭에 그는 남들보다 시즌을 늦게 매듭지었다. 충분한 휴식 없이 올 시즌을 준비한 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 건 당연했다. 김 대리는 “아픈 곳 없이 잘 뛰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초반 실력을 과소평가해 너무 미안하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검증이 아직 덜 됐지만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심수창, 문성현 등이 전력에서 이탈한 현재 브랜든 나이트와 함께 제 몫 이상을 해내고 있다. 원투 펀치 활약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기뻐했다.


[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앤디 벤 헤켄이 지난해 10월 25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판아메리카 대회 캐나다와의 야구 결승에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있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어느덧 넥센의 보배로 거듭난 헤켄. 그의 눈에 들어온 프로야구는 어떤 리그일까. 지난 10일 목동구장에서 헤켄을 만나 한국에서의 목표와 꿈에 귀를 기울였다. 또 좀처럼 마운드에서 잃지 않는 평정의 근원을 함께 들여다봤다.

다음은 앤디 밴 헤켄과의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5경기에서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야구에 대한 인상이 궁금하다.


앤디 밴 헤켄(이하 헤켄) 우수한 리그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타자들이 많이 보인다. 관중들도 마음에 들고. 야구인생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미있게 경기를 치르고 있어 즐겁다.


스투 한국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나.


헤켄 4~5년 전부터 유심히 지켜봤다. 2009년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제레미 존슨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넥센에 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나이트도 많은 조언을 해줬고. 따로 준비를 하진 않았다. 내 야구를 그대로 하고 있고 기대한 만큼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스투 시범경기 다소 부진했는데.


헤켄 잘 던지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잘 안되더라. 사실 지난겨울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시범경기를 준비 기간으로 삼고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초반 난조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현재 몸 상태는 어느 정도 돌아왔다. 앞으로 더 좋아질 여지도 남았다.


스투 현재 흐름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건가.


헤켄 그렇다. 큰 어려움은 없다. 모든 것이 부드럽게 잘 돌아간다.


스투 초반 불안한 모습이 몇 차례 노출됐는데.


헤켄 포수와의 호흡에서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타자들의 성향을 잘 모르다 보니 어떤 볼 카운트에 어떤 공을 던질지를 놓고 생각이 많았다. 그래도 1회를 잘 넘기면 2회부터 무난한 피칭을 보였다고 본다.


스투 선발투수로 등판한 다음 날이면 늘 정오에 야구장을 출근한다. 긴 러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부지런히 소화하던데.


헤켄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해오던 몸 관리 방법이다. 다음날 근육을 충분히 이완시켜줘야 다음 등판 때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어제 많이 던졌다고 노는 법은 없다.


[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사진=정재훈 기자)


스투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은 없나.


헤켄 없다. 좋은 훈련 시스템 덕에 미국에서 뛸 때와 거의 비슷하게 몸 상태를 관리하고 있다. 난관에 부딪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지풍 트레이너가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준다. 운동을 함께 자주 하는데 미국에서 보지 못했던 신기한 방법들을 많이 배웠다. 이 자리를 통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스투 마운드 위에서 본 한국 타자들은 어떠했나.


헤켄 전체적으로 매우 수준이 높았다. 특히 공을 배트에 맞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좋은 공을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파울로 연결되는 경우가 꽤 있다. 7회 이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나도 가만있진 않을 거다. 조금씩 투구 수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팀에서 이닝이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다.


스투 마운드나 더그아웃에서 평정을 잃는 법이 없던데.


헤켄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실점 위기에 닥쳤을 때 감정을 드러내면 타자와의 기 싸움에서 눌리기 쉽다. 그래서 난처하다는 표정을 잘 짓지 않는 편이다. 따로 표정을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더그아웃도 마찬가지다. 나의 돌출행동이나 솔직한 감정 표현은 자칫 선수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야구를 오래하다 보니 이 점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더라.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많이 겪었는데 앞으로 어떤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평정을 찾기 위해 애쓰겠다.


스투 원래 성격은 어떠한가.


헤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언어의 장벽이 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말수가 더 줄어들게 됐다. 처음 선수단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동료들과의 관계가 서먹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동료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걸어준다. 요즘 야구가 즐겁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스투 미국에서 꽤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는데.


헤켄 차분한 생각을 즐기는 편이다. 야구의 묘미 또한 생각 아닌가. 이 점에서 야구는 나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사진=정재훈 기자)


스투 취미가 무엇인가.


헤켄 먹는 걸 좋아해 새마을식당을 자주 간다. 그곳 메뉴 가운데 양념갈비를 자주 먹는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아 고기를 즐기는데 그 맛에 반해버렸다. 집에서는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게임을 한다.


스투 혼자 지내는데 어려움이 많을 텐데.


헤켄 아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쇼핑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얼마 전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혼자 새로운 식당을 돌아다니며 맛 기행을 하고 있다. 집에서 밀린 빨래를 할 때도 있고.


스투 자녀가 아직 없던데.


헤켄 일부러 두지 않고 있다. 내년에 가질 계획이다. 아내가 많이 보고 싶다.


스투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나.


헤켄 혼자 돌아다닐 때는 거의 없다. 나이트와 함께 다니면 종종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잠시 말을 멈춘 뒤)넥센의 골수팬 가운데 외국인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꽤 열정적으로 보였다. 그 외에도 몇몇 팬들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스투 나이트 외에 다른 선수들과도 교류하나.


헤켄 롯데의 라이언 사도스키, 쉐인 유먼 등과 저녁식사를 네 번 정도 했다. 아주 좋은 친구들이다. 삼성의 브라이언 고든, 미치 탈보트와도 최근 많이 친해졌다. 이들과 야구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친분을 쌓고 있다.


스투 당신은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나.


헤켄 사실 오고 싶은 마음은 3년 전부터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여러 조건을 마다하기 쉽지 않아 늦어졌을 뿐이다. 이렇게라도 마운드에 서게 돼 잘 된 것 같다.


[피플+]밴 헤켄, 마운드에서 음유시인 꿈꾸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스투 얼마 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뛰던 브래드 페니가 1경기만을 뛰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헤켄 잘 알고 있다. 문화적으로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타지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스투 일본 대지진에 대한 우려로 돌아가는 선수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헤켄 대지진 때문은 아닐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종종 발생하니까. 문제는 방사능이다. 오염이 꽤 심각하다고 들었다. 무서워서 제의가 와도 가지 못할 것 같다.


스투 한국에서의 어려움은 없나.


헤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툭툭 치고 지나간다. 그걸 이해할 수 없다. 가령 지하철을 이용하면 사정없이 몸을 치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국인과 다소 다른 존경의 표현은 충분히 인상 깊게 느끼고 있다. 다만 상대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으면 좋겠다.


스투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헤켄 다른 기자들도 많이 물어보는 질문인데 나는 특정 숫자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팀에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그게 내 숙제이자 사명이다. 그걸 잘 해낼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


스투 선수 은퇴 뒤에는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나.


헤켄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 시, 수필 등을 작성하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되면 꼭 해볼 생각이다.


스투 첫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헤켄 그 책의 정체는 수필이 될 것 같다. 선수생활을 하며 경험한 야구와 다양한 삶을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다. 지금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모두 적어두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지금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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