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새 무대 적응의 터널을 빠져나온 걸까. 이대호(오릭스)의 배트가 매서워졌다. 생명력 충만한 5월의 향기를 맡으며 4번 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대호는 지난 11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홈경기에 4번 1루수로 선발 출전, 4타수 3안타 맹타를 휘둘렀다. 안타 가운데 하나는 대형아치였다. 1-3으로 뒤진 8회 1사에서 상대 구원 짐 하우저의 시속 139km 몸 쪽 높은 직구를 걷어 올려 왼 담장을 넘겼다. 지난 6일 니혼햄 파이터스전 이후 5일 만에 터진 시즌 4호 홈런. 공동 6위였던 퍼시픽리그 홈런 순위는 공동 3위로 뛰어올랐다. 1위 윌리 모 페냐(소프트뱅크 호크스, 7개)와의 격차는 어느덧 3개. 팀 내에서는 아롬 발디리스와 함께 선두를 달린다. 초반 지독했던 부진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빠른 회복력이다.
이 같은 변화는 홈런 밖에서도 확인된다. 이대호는 5월 전혀 다른 선수로 변신했다. 3월과 4월 가진 24경기(102타석, 87타수)에서 타율은 2할3푼에 불과했다. 출루율과 장타율도 각각 .343과 .333에 그쳤다. 5월 성적은 크게 달라졌다. 11일까지 치른 10경기(40타석, 37타수)에서 타율 3할5푼1리, 출루율 .400, 장타율 .514로 선전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OPS(출루율+장타율). 0.676에서 무려 0.914로 상승했다. 시즌 득점권 타율도 어느덧 3할3푼3리로 뛰어올랐다.
눈에 띄는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핵심은 적극적인 타격에 있다. 이대호의 3월과 4월 타석은 다소 신중했다. 새 리그 적응 때문인지 공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적잖게 신경을 기울였다. 물론 실투나 가운데로 몰린 높은 직구에는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5월 들어 그 빈도는 더 잦아졌다. 최근 때린 2개의 홈런은 모두 높게 형성된 볼에서 비롯됐다. 타격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셈이다. 이는 볼넷과 삼진 등을 살펴봐도 잘 나타난다. 3월과 4월 이대호는 볼넷 14개를 고르며 10차례 삼진을 당했다. 10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5월 삼진 수은 벌써 7개다. 반면 볼넷은 3개뿐이다. 신중한 선구안보다 배트를 더 적극적으로 휘두른다고 볼 수 있다.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의 발디리스 5번 배치는 여기에 힘을 보탠다. 발디리스는 규정타석을 채운 퍼시픽리그 타자 가운데 타율 18위(.267) 장타율 6위(.433)를 달린다. 두 부분은 팀 내에서 모두 1위다. 타점도 15점으로 이대호와 함께 가장 많이 올렸다. 퍼시픽리그 전체로는 공동 5위다. 장타력이 돋보이는 발디리스의 뒷받침으로 이대호는 이전보다 정면 대결의 기회를 많이 얻게 됐다. 타격감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이대호는 11일까지 5경기 연속 안타를 때리는 등 매서운 상승곡선으로 오카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장타율 수치(.387)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1일까지 치른 34경기(142타석, 124타수)에서 뽑아낸 2루타는 3개뿐이다. 3루타는 물론(?) 한 개도 없다. 롯데에서 뛴 지난해 홈런(27개)을 제외한 장타는 27개였다. 이 가운데 2루타는 26개였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볼을 곧잘 때려내지만 국내리그에서 뽐낸 장타력을 아직 모두 회복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현재까지 기록한 장타는 상대의 실투나 높은 직구 등을 노려 쳐 얻은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호는 그 범위를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일본 진출 성공신화’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