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지난 3월 14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때 아닌 부정 투구 의혹에 시달렸다. 의문을 제기한 건 샌디에이고 구단 스카우트. 시범경기에서 땀에 젖은 왼팔, 목덜미, 머리카락 등에 손을 댄 뒤 그대로 공을 던졌다고 지적했다. 충분히 문제로 불거질만한 사안이었다. 투수는 마운드 위 또는 부근에 있을 때 입을 만지거나 공에 이물질을 바를 수 없다. 공이나 손, 글러브에 침을 뱉거나 맨손을 제외한 어떤 것으로 공을 문지르는 행위도 제한된다. 공을 손상시키는 일은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일본 일부 매체들은 자국 간판 투수의 선전을 우려한 메이저리그의 견제라고 보도했다. 물론 뚜렷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문화적 차이를 떠나 당연히 지켜야 할 야구 규칙이었던 까닭이다.
지난 3일 LG 신인 최성훈은 ‘괴물’ 류현진(한화)과의 맞대결에서 승리(6-2)를 챙겨 화제를 모았다. 6이닝 동안 상대 타선을 6피안타 3볼넷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그런데 경기 뒤 투구를 복기하며 그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1회 투구 도중 왼 검지 손톱이 깨져 반쪽이 일어나려고 했다. 코치와 상의한 끝에 깨진 부분을 본드로 붙이고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실직고한 내용은 명백한 반칙이었다. 야구규칙 8조 2항에는 ‘투수가 이물질을 신체에 붙이거나 지니고 있는 것, 이 항을 위반한 투수는 즉시 퇴장 당한다’라고 기재돼 있다. 예외는 있다. 테이핑 등 이물질 부착이 심판 또는 상대팀 어필에 의해 확인된 경우 심판원의 재량 하에 타격의 타격행위에 혼돈을 주지 않고 투구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허용한다. 한대화 한화 감독은 이날 부정투구와 관련해 어떠한 어필도 하지 않았다. 이를 발견하지 못한 건 심판도 다르지 않았다.
어필 혹은 심판의 확인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강문길 단국대 감독은 “경고나 퇴장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다. 본드와 같은 접착제는 충분히 투구, 특히 변화구 등에 적잖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투구 변화에 영향을 미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성훈의 주 무기는 직구와 커브다. 큰 낙차를 뽐내는 커브는 엄지와 검지 사이로 빠져나간다. 검지와 중지로 공을 아래로 잡아당기면서 엄지를 가볍게 돌린다. 검지의 활용이 무척 중요한 셈. 물론 이는 변화구 대부분에 모두 해당된다.
야구 해설위원 A씨는 “손, 글러브, 유니폼 등에 침, 땀, 바셀린, 그립스프레이 등을 바르는 투수들이 종종 발견된다. 최성훈과 같이 부상으로 비롯된 경우가 절반 정도”라며 “이물질 대부분이 무채색을 띄어 심판이나 상대팀 코칭스태프가 눈치를 채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 대학팀 감독은 “상처 치료를 목적으로 바르는 이물질은 서로 묵인해주는 분위기”라면서도 “침, 본드 등 투구에 적잖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는 예외”라고 전했다.
갑작스런 부상에 임시변통으로 이물질을 바르는 경우는 이따금씩 발견된다. 세밀해진 경기 중계로 시청자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넥센의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는 4월 29일 청주구장에서 오른 검지에 부상을 입었다. 투구 도중 손톱이 깨지며 바로 밑 피부가 벗겨졌다. 나이트는 더그아웃에서 아이싱으로 통증을 완화시킨 뒤 바로 상처에 이물질을 칠했다. 빨리 아물길 바라는 마음에 입으로 바람을 넣어주기도 했다. 이 같은 미봉책 역시 규칙 위반 행위. 하지만 나이트는 문제없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상대팀은 어떠한 지적도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는 한화였다.
한 야구 관계자는 “부정 투구 발견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문제로 불거지는 사례가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경기 운영 유도와 감독들의 많지 않은 경험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린 김재박 전 LG 감독은 부정 투구를 잘 찾아낸 대표적인 수장이다. 류현진은 2008년 5월 11일 대전 LG전에서 퇴장을 당할 뻔했다. 김재박 감독이 밖으로 노출된 왼 팔의 테이핑이 타격에 방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 까닭이다. 류현진은 바로 마운드에서 내려가 테이핑을 떼고 옷을 갈아입었다. 김 감독이 이틀 연속 만원관중이 운집한 대전구장을 고려해 한 걸음 물러나며 퇴장은 겨우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화는 경기를 내줬고 LG는 기나긴 9연패의 늪을 탈출했다. 김 감독은 일주일 뒤 부정 투구를 한 차례 더 잡아냈다. 제물은 KIA의 이범석. 몇 차례 땀을 닦은 오른 손가락과 투구 전 손에 입김을 부는 행위 등이 반칙이라고 주장, 상대의 심리를 흔들어놓았다. 28일 두산전에서는 이재우의 선글라스를 벗기기도 했다. 선글라스 테에 야간조명이 반사돼 타격에 방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제기를 강광회 주심이 받아들였다. LG는 김 감독이 부정 투구를 거론한 세 차례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A씨는 “김재박, 김성근 감독과 같이 상대를 꼼꼼하게 체크할 경우 퇴장을 당할만한 선수가 여럿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정 투구에 관한 코칭스태프, 선수들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많이 미흡하다”며 “정확한 규칙을 모르고 부상을 치료하는 팀 트레이너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스포츠투데이가 무작위로 시도한 세 번의 전화통화에서 부정 투구와 관련된 규칙을 숙지하는 트레이너는 한 명도 없었다. 이 같은 경향은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 뒤 최성훈이 기자들에게 본드 사용을 당당하게 밝힐 정도다. 이에 정금조 KBO 운영기획부장은 “최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지만 기본적인 규칙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프로야구가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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